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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1-11-5 큐티말씀 - 해결책은 부활이다(고전 15:12-19)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2021.12.02 21:52조회 수 3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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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고전 15:12-19

제목: 해결책은 부활이다

 

고린도전서 15장은 온갖 싸움으로 많은 문제를 갖고 있던 고린도교회에게 주는 사도바울의 마지막 해결방법과도 같은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15장이 고린도전서의 결론이라고도 할수 있습니다. 물론 그 뒤에 16장이 있지만 16장은 부록처럼 덧붙이는 말과 인사라는 생각이 들구요. 이 15장이 바로 결론입니다. 성도님들 혹시 15장을 무슨 장이라고 하는 줄 아십니까? 12장이 은사장이였고 13장이 사랑장이었죠? 그리고 이 15장은 부활장이라고 하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은사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가장 좋은 사랑에 대해서 애기하다가 다시 방언으로 그리고 다시 부활로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를 마무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는 분파 당파로 인해 문제가 많은 교회라고 했습니다. 게바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바울파가 싸움을 하고 있는 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시선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이들이 왜 싸움을 합니까? 바로 이들의 시선이 이 땅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님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물론 이 땅도 소중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정작 추구해야 할 삶은 이 땅에서의 삶이 아닌 죽음 이후에 오는 부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가치를 두고 산다면 현실에 타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당연합니다. 이 세상이 끝인데. 어떻게 하든지 남을 밟고 일어서야죠? 이 세상이 끝인데. 여기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최고 최악의 모습을 다해서 이 땅에서 누리고 추구하고 쟁취하며 살아가는게 당연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 세상 사람들이 지금 이렇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그렇다 쳐도 자기의 유익을 위하지 않고 남의 유익을 구하고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고 섬기고 심지어 손해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순교까지 할 수 있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믿는 사람에게는 부활이라고 하는 이 땅에서의 삶이 아닌 그 이후의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분쟁을 이기는 해법으로 ‘사이좋게 지내라’ ‘서로 사랑해라’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핵심인 부활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이 질문은 우리들에게 해당이 되는 해결책입니다. 우리에게도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만 그 해결은 부활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분쟁에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지는 쪽은 망하는 겁니다. 그런데 져도 되고 물러날수도 있는 손해를 봐도 행복한 욕을 먹고 비난을 받고 박해를 받아도 좋게만 생각하는 모든 것이 은혜다라고 고백할수 있는 높은 가치는 바로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이라고 하는 단어는 에크 라고 하는 전치사와 함께 사용을 하고 있는데요. 그러면 이런 뜻이 됩니다. 함께 눕다. 일으켜 세우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지금 누워 있습니다. 죽었단 소리죠? 그런데 그 중에 어떤 사람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죠? 눈에 띄게 됩니다. 관심과 부러움을 사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부활을 로마에서 사용하는 법적인 용어인 부활의 권세 권력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활은 남들이 다 우러러 볼 만한 엄청난 권세다. 권력이다. 마치 노예였던 사람이 황제의 특명으로 시민권자가 되고 귀족이 되는 것처럼.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부활을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어제 목사님을 통해서 들으신 것처럼 우리 예수님은 성경대로 죽이시고 성경대로 살아나셨습니다. 여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해서는 고린도교회 모든 성도들이 동의를 했습니다. 그러기에 그 곳에 교회가 세워 졌겠죠? 그리고 그 사실을 모든 성도들은 다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바울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이 사실을 증언하려고 이 책을 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어라 라고 쓴 것도 아닙니다. 이미 고린도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사람들이 한 가지 잊고 있었던 것이 있었는데요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15절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오늘 본문의 초점은 “죽은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 이것이 초점입니다. 12절 말씀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여기서 죽은 자 라는 말은 육적인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닌 내적인 죽음 영적인 죽음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아담이 범죄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정녕 죽으리라 그래서 죽은 것처럼 누가복음 15장에서 탕자의 비유 중에 이런 구절 있었습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 아버지를 떠난 아들이 영적으로 죽었다가 아버지를 찾아 다시 돌아왔을 때 다시 살아난 것 처럼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1에는 사데교회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네가 네 행위를 아노니 내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자라” 육적으로는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내면은 죽은 것처럼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사람들에게 형제들아 고린도교회 사람들아~ 너희는 믿는 사람이라고 하나 죽은거 같다. 그리스도인은 그럴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부활의 권세 권력을 가진다. 그러니 “오늘을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고린도교회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매일 벌어지는 싸움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부활을 “내가 천국가는 티켓을 확보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죽어서 가는 곳이 천국이라고 생각해 버립니다. 그런데 지금 사도 바울이 말하는 부활은 현재성입니다. 내일 본문인 15장 29절부터 홍해를 건넌 사건을 세례를 받았다고 표현한 것처럼 셰례라고 하는 것은 죽음과 삶이 동시에 벌어지는 사건입니다. 그러니까 너희는 그리스도로 세례 받은 자인데 죽은 자처럼 살지 말고 부활한 사람처럼 살아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소망은 가지고 있는 것처럼 끌어다 쓰는 것입니다. 앞으로 될 거야!! 라고 하는 희망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바로 소망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바로 이런 겁니다. 앞으로 구원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믿는 것이라 아니라 믿음은 구원이 됐다. 라고 믿는 것입니다. 왜요? 우리 하나님이 완전하시니까요? 전능하시니까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내일 본문이지만 20절 말씀을 찾아보시면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사 잠자는 자의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첫 열매가 되었다는 말은 두 번째 세 번째 그 다음 열매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은 귀신들도 할수 있는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부활이 지금 우리를 살리는 능력이 되라는 것입니다. 시선을 땅. 이 세상에 두지 말고 하늘에 두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죽었지만 앞으로 살 사람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예수님으로 인해 살아 있는 사람처럼 당당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이 해결책입니다. 그 어떤 분쟁도 아픔도 가난도 질병도 박해와 멸시도 이겨 낼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은 우리의 부활의 백성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도님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죽은 자들이 아닌 예수님의 권능으로 십자가 보혈로 지금 살아 있는 자들입니다. 안 믿는 세상 사람들처럼 죽은 자처럼 사는 것 이 아니라 

이 땅만 바라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 답게 예수 그리스도 인해 살아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권능일 것입니다. 부활은 죽어서 누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사명일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성경은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은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하나님이 아닌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이시기에 우리도 산 사람처럼 부활한 사람처럼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이 바울의 권면처럼 부활을 자랑하며 우리의 신분이 이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닌 하늘에 있음을 알아 부활의 소망 부활의 권력과 권세를 자랑하며 사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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