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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3-3-15 큐티말씀 - 누구를 위한 안식일인가(막3:1-12)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2023.03.17 11:42조회 수 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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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막 3:1-12

제목: 누구를 위한 안식일인가  

 

 어제 본문에 이어 안식일에 대한 논쟁이 다시 이어집니다. 안식일에 관한 두 번째 논쟁은 회당에서 발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을 때, 그곳에 한쪽 손이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손이 말랐다는 말은 정상적인 다른 손에 비해 심하게 왜소하거나 마른 손을 가진 장애인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이 전혀 다른 곳에 있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이 사람이 고침을 받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사람도 고치실까? 아닐까? 하는가에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간적 배경이 안식일이라고 했죠? 그러니 사람들이 회당에 모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관심이 병자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실 것인지를 주시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주시는 이유는 안식일 규례를 지키는지 어기는지를 확인하고 싶어서 였습니다.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는 일은 안식일에 금지된 규정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안식일에도 사람을 고칠 수 있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은 생명에 심각한 지장이 있는 경우였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안식일이 아닌 다음날 고쳐야만 했습니다. 그러니 이 규정대로 라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그 손 마른 사람을 고친다면, 예수님은 안식일 규례를 지키지 않고 율법을 깨뜨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기회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님들 이걸 한번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안식일을 재정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어제 목사님도 말씀 주셨지만 안식일의 핵심은 쉬는 것 멈추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해 만드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쉼이 필요 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멘 그런데도 안식일을 만들어 놓고 우리에게 지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들을 위한 멈추는 제도를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멈추고 뭘합니까? 아무것도 안하고 쉬는 겁니까? 아닙니다. 쉬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나누는 것 일주일이 모두 하나님의 날이지만 더욱 더 주의 날을 기억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 이것이 안식일에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혹시 이번에 있었던 중고등부 수련회 사진 보셨습니까? 학부모방과 교회 홈페이지에 열심히 올리고 있는 중입니다. 어쩜 애들이 이렇게 환하게 웃고 있는지요? 그 비밀을 아십니까?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빼앗거든요. 수련회 참석조건이 그겁니다. 핸드폰 수거 후 보관, 싫으면 오지마라 3년전 코스타 때도 요걸 할려고 했더니 홍콩측의 강력한 반대로 못했습니다. 개인보호법 위반이래라 뭐래나요.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수련회때 핸드폰이 없으니 애들이 서로 대화를 하더라구요. 웃고 떠들고 공놀이를 하고 과자만 먹어도 틀리기만 해도 넘어지기만 해도 그렇게 재미있을수가 없더라구요. 이게 쉰다 멈춘다는 의미입니다. 멈추니 다른게 보이고 쉬는 다른 걸 할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안식일에 관해 모세를 통해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친히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후대에 랍비위원회라고 부르는 집단들이 여기에 각주를 달고 규정을 만들어 성경의 가르침보다 더 세부적이고 광범위한 안식일 규례를 만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규정은 하나님이 직접 말씀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추가 규정을 안식일을 제정하시고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들이내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유대인들의 생각을 예수님께서는 아셨기에, 그들에게 그렇게 물으셨습니다. 4절입니다. 여기에 안식일에 핵심이 다 들어가 있는데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일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안식일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알려주셨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규정에 매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선을 행하고 좋은 일을 행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던 유대인들의 완악한 마음을 아시고 속으로 탄식하시며 노하셨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의 아픔에는 관심이 없고, 안식일 규정을 지키는 일에만 관심이 있던 종교인들의 마음을 보고 속으로 탄식하시며 노하셨던 것입니다. 

 성도님들 예수님은 그리고 성경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일점 일획도 헛되게 쓰여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의 생각을 아시면서도 보란 듯 그 손 마른 사람을 일부러 안식일에 치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자,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기들의 완악한 마음을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나가서 그들의 원수였던 헤롯당과 함께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하게 되고 결국은 안식일을 범했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죽이고 맙니다. 안식일 어떻게 보내야겠습니까? 사실 안식일이 아닌 신약시대는 주일을 지키는 일에 대해서는 여러차례 말씀드린적이 있습니다. 안식일 다음날 무덤을 깨고 부활하신 그 주의 날을 우리는 지킵니다. 우리의 믿음이 무덤이 아닌 부활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주일 어떻게 보내야겠습니까? 주일 뿐이겠습니까? 365일 매일 매일 어떻게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살아가는 우리모두가 되길 소원합니다. 

 

또 오늘 본문은 두 번째 사건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지도자들의 마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바닷가로 나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닷가에 계시다는 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갈릴리에서 뿐만 아니라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강 건너편 그리고 심지어는 두로와 시돈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을 소문으로 듣고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예수님께 찾아온 사람들은 예수님께 몰려들어 예수님을 만지려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작은 배를 갈릴리 호수에 띄우시고 그곳에서 무리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눈여겨 볼 것이 이 사역의 자리에는 귀신 들린 사람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입니다.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그 악한 귀신들이 예수님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외쳤습니다. 참 기가막히죠? 평생 메시야를 하나님을 기다려오고 묵상하고 공부해왔던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이라고 배척하는데 귀신들은 예수님을 알고 그 앞에 엎드렸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만 합니다. 누가 더 잘 한겁니까? 둘다 문제가 많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 2장 19절에서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귀신들고 하나님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도 믿을 수도 없기에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알고만 있는 지식만 있는 믿음이 되지 말고 그 예수님을 믿는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지라고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성도님들 그 예수님을 알고 계시다면 머리로만 동의하는 삶이 아니라 그 예수님을 따르는 복된 우리들 되길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이 이렇게 끝이 납니다. 12절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경고하시니라 아멘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을 향해 자기를 세상에 드러내지 말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전도를 위해서라면 더 많이 소문을 내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요? 불치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오병이어로 물위를 걸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우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될까요?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구약의 많은 예들을 통해 배웠습니다. 열 재앙을 경험하고 홍해를 건너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구름기둥으로 불기둥으로 물이 풍부한 엘림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았어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잊고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합니다. 이게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사람은 기적으로 변화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병을 고쳐주고 귀신을 쫓아내 주고 먹을 것을 주어도 사람들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또 언제가 병에 걸리고 귀신에게 휘둘리고 언젠간 또 배고픔과 목마름을 경험하는게 당연한 인생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나는 이 땅에 의사 예수 부자 예수가 아닌 구원자 예수 왔음을 사람들이 알게 하시려고 섬기로 죽으러 십자가 지시러 이땅에 왔음을 잊지 않게 하시려고 경고하시고 잠잠하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성도님들 우리가 섬기는 우리가 믿는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신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의 뜻대로 누구의 말대로 누구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할까요? 당연하겠죠? 그러나 우리는 이 당연한걸 지키며 살아갈 힘과 용기와 믿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이 믿음을 우리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용기와 믿음 주시길 날마다 말씀으로 날마다 깨우쳐 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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