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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2-5-3 큐티말씀 - 성도의 열매(살전1:1-10)

사무간사22022.05.13 16:07조회 수 38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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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살전1:1-10

제목:성도의 열매

 

▶삼일운동하셨던 한용운 선생이 전국의 주지스님들을 모아 놓고 강연을 한 적이 있다. 한용운 선생이 스님들에게 물었다.“세상에서 똥보다 더러운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대답이 없자 한용운 선생이 답을 말했다.“시체썩는 냄새다. 그러면 시체썩는 냄새보다 더 더러운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또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한용운 선생이 그 주지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시체썩는 냄새보다 더 더러운 것은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중놈의 마음이다!” 마찬가지이다. 성도의 마음속에서 예수가 사라지면 성도의 마음은 똥이나 시체보다 더 더러워진다. 성도가 성도다워지려면,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살아야 한다.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신앙의 열매, 영적인 열매는 저절로 많이 맺히게 되어 있다. 오늘 본문 2절에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성도들에게 감사하는 이유는 데살로니가교회가 맺은 3가지 열매 때문이었다. 3절에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이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맺은 3가지 열매는 성도라면 당연히 맺어야 할 열매이다. 성도가 당연히 맺어야 할 열매는 어떤 것인가?

 

▶첫째, 성도에게는 <믿음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역사>의 정확한 뜻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역사, 믿음에서 비롯된 역사”이다.

여기서 “역사”(헬:에르곤)는 ‘일, 행위, 행동’을 의미한다. 약2:26에 나오는 “행함이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말씀에서 <행함>이 바로 본문의 ‘역사’와 같은 단어인<에르곤>이다. 그래서 공동번역은 “믿음의 활동”이라고 번역했다. 게다가 의미심장하게도 역사, 행위를 의미하는 에르곤은 소유격명사이다. 즉 믿음은 반드시 에르곤(역사,행동)을 동반하게 된다는 뜻이다. 믿음은 반드시 행위를 동반한다. 그런데 믿음은 반드시 어떤 행위를 동반하는가?

행17장에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3주간 말씀을전했을 때, 바울을 맞이하여 들인 사람이 <야손>이라는 사람이다. 야손은 복음을 믿고 바울을 자기 집으로 영접했다. 그런데 그로 인하여 야손은 어려움을 당했다. 야손은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고, 법정에 고소를 당하고 보석금을 내고서야 풀려났다. 그런데 야손은 그후에 바울의 3차선교여행에 동행하였다. 즉, 믿음 때문에 억울하게 핍박을 받고, 고소를 당하고, 물질적 손해도 보았지만, 야손은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오히려 복음전도에 적극 동참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역사>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믿음의 역사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행위>이다.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 그러나 믿음의 역사는 우리가 예배에 빠지지 않고, 헌금을 드리며, 봉사를 하는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믿음은 <무엇을행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르느냐>의 문제이다. 그런데 주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주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먼저 <가치관의 변화>이다. 성도가 맺어야 할 열매인 <믿음의 역사>는 제일 먼저 <가치관의 변화>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여러분이 복음을 제대로 듣고 믿었다면, 진실로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를 믿었다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변화는 <가치관의 변화>이다. 즉, 예수 믿고 나서 나타나야 할 변화는 <세상 것이 그렇게 큰 가치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관의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말씀이 바로 마13:44의 <밭에 감추인 보화비유>이다. 밭에서 일을 하다 땅 속에 감추어져있던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그 보화를 자기 소유로 삼기 위해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보화의 가치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농부는 보물을 발견하자마자 자기의 소유에 대한 욕심을 포기해 버린다. 여러분,만원을 얻기 위해 천원을 포기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인가? 내가 무엇인가를 포기해서 백배,천배를 얻는다면 버리지 못할 사람이 있는가? 천국은 그런 곳이다. <천국을 발견한 사람은 그 천국을 얻기 위해 세상 것을 포기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믿음에 의해 비롯된 가치관의 변화이다. 그런데 올바른 믿음을 가지지 못하면,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천국보다는 세상이 더 좋은 것이다. 그래서 본래 예수 믿으면 세상을 팔아 천국을 사야 하는데, 오히려 천국을 팔아 세상을 사려고 한다. 왜 그러는 것인가?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마치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몰라서 껌 1통과 바꾼 아프리카 사람들처럼, 천국의 가치, 예수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세상 것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러나 성도는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이다./세상이 보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물로 여겨지는 것이 믿음의 역사이다. 여러분에게 믿음의 역사가 있는가? 여러분에게 있어 하나님이 보물인가? 아니면 세상이 보물인가?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혹시 여전히 세상 것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마음이 세상을 향해 있지는 않는가? 믿음에는 반드시<주님의 뜻을 따르는 가치관의 변화>가 동반된다.

 

▶둘째, 성도에게는 <사랑의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3절/본문에서 말하는 사랑의 수고는 이웃을 돕기 위해 수고하는 사랑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수고는 예수님과 상관없는 세상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교회에 나타난 사랑의 수고는 인간관계에서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과의사랑이다. 왜냐하면, 본문에 나온 사랑은 가족이나 친구간의 사랑을 의미하는 필리아

가 아니고, 또 이성간의 사랑을 의미하는 에로스도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하는 <아가페>이기 때문이다. 아가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아무 조건없이 베풀어지는 사랑을 의미한다. 그리고 수고는 “피곤할 정도의 노동이나, 또는 녹초가 될 정도의 고된 일”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랑의 수고란,<사랑은 반드시 희생적 수고를 동반한다>는 뜻이다.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 감사한 것은 이러한사랑의 수고가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야손은 복음을 위해 자기 집을 교회로 내어놓았고, 또 그것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큰 희생을 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손은 바울의 사역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그러므로 사랑은 희생적 수고를 동반한다. 그래서 믿음의 진정성은 바로 그런 사랑의 수고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교회안에 사랑의 수고를 하지 않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주를 위하여> 아무 수고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주를 위해 아무 희생도 하지 않으려고 하고, 교회를위해서 아무 수고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그 사람을 어떻게 믿음이 있다고 인정할 수있고, 어떻게 그 사람을 교회의 일꾼으로 세울 수 있는가? 그럴수 없다. 그런데 또한 부류가 있는데, 수고를 하기는 하되, <자기를 위해서> 수고하는 사람들이 있다.내가 섬기면 무엇인가를 하나님이 주시겠지 하면서, 댓가를 바라며 수고하는 것, 댓가를 바라며 헌신하는 것은 <사랑의 수고>가 아니다. 아예 수고를 안하거나, 또는수고를 한다해도, 자기 유익만 계산하는 경우는 성경이 말씀하는 <사랑의 수고>와는거리가 아주 멀다고 할 수 있다. 왜인가? 사랑은 희생적 수고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여러분, 우리가 주를 위해 수고하는 바른 동기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주님의 사랑이어야 한다. 그래서 롬5:7-8“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동반했다. 예수님의 사랑은 <자기 목숨을 내어놓는 사랑>이었고,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에가능하다. 주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수고하고 희생하는 것이다. 그런 주님앞에 <내가이것을 하고, 저것을 했으니, 내게 복을 달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믿음이 아니며,참된 사랑의 수고가 아니다. 우리의 헌신과 수고는 복받고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무 큰 사랑을 받았기에 감사하는 마음과 보답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어야한다. 혹시 지금 무엇 때문에 수고하고 있는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주님이내게 베푸신 사랑>때문에, 그것이 동기가 되어 주님을 위해 희생하고 수고하는 성도되길 축원한다.

 

▶셋째, 성도에게는 <소망의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소망은 “좋은 기대나 희망”을 나타내는 소유격 명사이다. 그런데 이 소망은 “주를 믿으면 언젠가는 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그런 소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앞에 전제가 붙어있죠?“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이다. 그래서 소망의 인내라는 말의 정확한 뜻은<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은 반드시 인내를 동반한다>는 뜻이다. 왜 주님에 대한 소망은 인내를 요구하는가? 인내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믿음이 무엇인가? 믿음은 <참고 견디고 버텨내는 것>이다. 여러분, 성도에겐 인내가필요하다. 인생에 있어 대부분의 실패의 요인은 참지 못해서, 인내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부부간의 결혼생활의 실패도 참지 못해서, 인내하지 못해서 발생한다. 사업도 인내가 필요한데, 이거 해보고 안되면 금새 저거하고, 저거 해보다가 안되면 금새 다른 것으로 바꾸고. 그러니까 어려운 것. 성도는 참는데 선수여야 한다. 성도는 먹는데 선수, 화내는데 선수이면 안되고, 참는데 선수여야 한다. 그런데 왜참아요? 어쩔수 없어서 참는게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 때문에 참는 것이다.성도의 소망은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를 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그리고 저 사람을 바꾸어 가실 것이라는 소망이 성도를 인내하게 만든다. 믿음으로 가치관이 달라지며, 주님의 사랑으로 수고하며, 주님에 대한 소망으로인내하는 사람 되시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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