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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2-4-29 큐티말씀 - 감히 이런 일을(에7:1-10)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2022.05.13 15:55조회 수 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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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에 7:1-10

제목: 감히 이런 일을 

 

아하수에로 왕은 악한 왕의 대명사라고 했습니다. 187일이나 계속되는 사치와 향락의 근본에는 수 많은 나라들 인도에서 구스까지의 많은 나라들의 피와 눈물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오늘 본문에서 하는 이야기는 마치 다른 누군가의 말을 전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감히 이런 일을” 내 백성인 유다민족에게 행하는 자가 누구냐? 그 다른 누군가가 바로 하나님이심을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한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믿음도 제사라는 단어도 등장하지 않지만 그 어떤 책보다 더 신앙적인 책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손 보이지 않는 분이 이 책 이 이야기의 저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저자가 이 세상의 그리고 우리의 주인이시기도 합니다. 

 또 아하수에로 왕과 함께 등장하는 하만은 아하수에로왕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낼 만큼 능력 있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왕을 제외하면 페르시아에서 그 누구보다도 높은 위치에 있었고, 재산과 자녀들까지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일을 행하기 시작하시자, 하만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꼴등이 무너지는 것보다 1등이 무너지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합니다. 하만의 인생은 누구보다도 높아보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의 무너짐을 다루는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 밖에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 최후를 맞게 되는지 생생한 교훈을 주는 것만 같습니다. 

 

 하만은 어제 본문에서 자신이 왕의 옷을 입고, 왕관을 쓰고, 왕의 말을 탈 줄 알았는데, 모르드개가 주인공이었고, 자신은 마부였습니다. 심한 충격을 받고서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친구들에게 지혜를 구했지만 쓸데없는 비관적인 견해만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만이 받은 충격을 정리하기도 전에, 자신을 데리러 온 내시들을 따라서 에스더가 베푼 두 번째 잔치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하만이 무엇인가에 끌려가는 복선을 제시한 후 그리고 오늘 본문 2절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왕이 이 둘째 날 잔치에 술을 마실 때에 다시 에스더에게 물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곧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 아하수에로왕은 술이 한잔 두잔 들어가자, 에스더에게 요청할 것이 무엇인지를 물으며 다시 ‘나라의 절반’을 언급합니다. 이번이 세번째인데요 세번씩이나 반복했다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겠다는 왕의 강한 결단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에스더에게 간절한 요청이 있었는데, 이제는 아하수에로왕이 제발 얘기를 해달라고 애걸하는 모양으로 바뀐 듯합니다. 왕의 요청에 에스더가 이렇게 말합니다. 3절에서 4절입니다. "왕후 에스더가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좋게 여기시면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만일 우리가 노비로 팔렸더라면 내가 잠잠하였으리이다 그래도 대적이 왕의 손해를 보충하지 못하였으리이다 하니" 

에스더의 주제 중 하나가 진멸함이라고 했죠? 지금 누군가가 왕후와 왕후의 민족을 진멸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왕도 궁금하고 하만도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하수에로 왕이 묻습니다. “감히 이런 일을” 그가 누구냐? 분명 말하는 이는 아하수에로 왕인데. 어째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거 같지 않습니까? “감히 이런 일을” 내 백성인 유다민족을 해하는  자가 누구냐? 계속해서 5-6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하수에로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말하여 이르되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가 어디 있느냐 하니 에스더가 이르되 대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이니이다 하니 하만이 왕과 왕후 앞에서 두려워하거늘 5절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괄호열고 왕이 말을 더듬으며 손을 떨며 가로닫고 뭐 이런 뜻일 것입니다. “왕이 왕후에게 물었다. 그리고 왕이 에스더에게 물었다.”입니다. 아하수에로왕이 얼마나 당황하고, 분노에 차서 말을 잘 잇지 못하는 것 같은 생생함을 전달합니다. 또한 자신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그것도 자기 아내인 왕후에게....아하수에로왕이 분노하고 있을 때에, 옆에 있던 하만도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굴까? 라고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자신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하만’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에, 마른하늘에서 떨어지는 날벼락을 맞은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하만 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에 아하수에로왕은 당혹스러움과 분노를 참지 못하고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왕궁 안뜰로 나가 버렸습니다. 왜 나갔을까요? 많은 학자들의 해석이 있지만.. 음 저는 설교 시간에 할 애기는 아니지만 담배피로 갔을꺼 같습니다. 휴 아이고 저걸 죽여? 말아? 아까운데. 하만을 따르는 무리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텐데.. 

저걸 어쩌지? 이렇게 고민하고 있었던 그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돌아온 아하수에로왕은 조금도 의심없이 하만을 버립니다.  8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왕이 후원으로부터 잔치 자리에 돌아오니 하만이 에스더가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렸거늘 왕이 이르되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하니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나오매 무리가 하만의 얼굴을 싸더라 하만이 에스더의 의자 위에 엎드려, 에스더에게 살려주기를 애걸복걸하는 모습이, 멀리서 볼 때는 마치 왕후를 겁탈하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여기에 또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당시 페르시아의 법에 의하면 왕후에게는 왕을 제외하고서는 최소한 일곱 걸음 이상 떨어져 있어야 했습니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어도 동일하게 일곱 걸음 이상 떨어져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니 페르시아의 예법에 의하면 왕이 안뜰로 나갈 때에 하만도 함께 나갔어야만 했는데, 그랬으면 그는 살았을수도 있습니다. 왜 그랬어? 죽을죄를 졌습니다. 그래 그냥 다시 원래되로 돌아가자. 왕후 건드리지마.. 이러고 끝낼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술에 잔쯕 취해서 사고가 마비된 하만이 그 때에는 미처 그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왕궁의 예법을 어기고 왕후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있는 하만의 모습을 왕은 보고.. 왕비를 겁탈한다고 분노하는 왕의 모습을 보고서, 주변에 있던 신하들이 하만의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습니다. 그것은 사형선고와도 같았습니다. 얼굴을 가리는 것은 더 이상 빛을 볼 가치가 없는 죄인이라는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마무리가 됩니다. 9-10절입니다. "왕을 모신 내시 중에 하르보나가 왕에게 아뢰되 왕을 위하여 충성된 말로 고발한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하만이 높이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는데 이제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 왕이 이르되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 하매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 그 나무에 하만이 달렸습니다. 그러자 왕의 분노가 그쳤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도대체 감히 어떤 민족이 유다민족을 괴롭혀? 아멜렉이야? 아말렉 족속의 이름을 기억도 하지 않게 하시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지금에서야 이루어졌습니다. 이 사건으로 8장에 하만과 그의 가족은 몰살을 당하고 아말렉 족속은 12월 13일 유다민족 을 죽이기로 했던 그날에 반대로 유다민족에게 처절한 복수를 당하고 그 이름이 아에 지워져버리는 비운의 민족으로 남게 됩니다. 하만은 그 나무장대를 만들라고 지시를 내릴 때에  거기에 자신이 매달리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잠언 16:18절에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하만은 당시 페르시아에서 최고의 권력을 누리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그저 죄인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자리, 어떤 역할을 하고 있든지, 거기에 우리가 있는 것은 우리를 허락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나를 허락하시고 오래참으시고 은혜로 붙잡아 주셨다는 것을 잊으면, 바로 내가 하만이 됩니다.

 성도님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를 지금의 삶의 자리에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우리를 이 땅에 심어주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함으로, 하만의 길이 아니라 에스더의 길을 따라서 사는 한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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