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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1-11-17 큐티말씀 - 낙심할수 없는 이유(고후 4:16-5:10)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2021.12.03 15:58조회 수 5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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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고후 4:16-5:10
제목: 낙심할수 없는 이유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철저하게 겉사람과 현재에 집중하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 뿐만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전부다 겉사람을 치장하는데 많은 노력을 하고 건강과 외모를 가꾸는데는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나보다 겉사람이 더욱 화려하다고 느끼면 좌절하거나 열등감에 빠집니다. 그래서 결국 고린도교회에도 분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런 고린도교회 사람들을 향해 사도바울은 편지를 썼습니다.


오늘 본문이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그러므로' 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한다고 말하는데, 아니 할수 없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4장에서 말한대로. ‘고린도성도들은 하나님께 직분을 받았고’ ’하나님이라는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기 때문이라고‘ 어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인 4장과 5장에는 대조적인 단어들이 많이 등장을 합니다. 겉사람과 속사람, 잠시와 영원, 환난과 영광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 이런 단어들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단어들을 사용해서 성도들이 낙심치 아니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낙심할수 없는 이유’는 마지막 때가 되면 첫째, 육신의 장막을 벗고 하늘의 영원한 집에 살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시작하면서 바울은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합니다. 헬라인들은 육체는 거룩하지 않고 영혼만 거룩하다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는데요 바울은 이러한 일차원적인 생각을 넘어 영원에 대해 차원이 다른 이야기를 고린도교인들에게 설명합니다. 그게 바로 땅에 있는 장막집과 하나님이 지으신 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5장 1절에서 사도바울은 “만일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사도바울은 텐트 메이커를 하면서 사역을 했기에 장막에 관해서는 귄위자 였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텐트에 비유합니다.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지면  우리는 무너지면 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우리 생각에는 ”망했다. 끝장나다. 소멸되다. 없어지다“ 라는 뜻으로 생각되기 쉬운데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쓰인 무너지면 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아날루세우스’라는 단어로 사용됩니다. 사실 이 단어는 군사용어로 쓰이는 단어였습니다. 이 단어는 모든 전쟁이 다 끝나고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텐트를 매고 있는 줄을 ‘풀다. 떠나다. 철수하다’ 라는 뜻으로 사용된 긍정적인 단어입니다. 어떤 병사가 전쟁에 이겨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싼다고 했을 때 그동안 살았던 임시 장막을 해체하는 고정하는 줄을 풀 때 아 그동안 정들었는데 하면서 아쉬워 하면서 머릇 거리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기쁨으로 너무 좋아서 콧노래를 부르며 이 장막을 무너뜨렸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땅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땅이 전부인줄 알고 살기에 이 땅에서 아등바등 살고 있지만 믿는 사람들은 이 땅이 전부가 아닌 줄 알기에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겉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낡아지는 자신의 겉모습을 보면서 또 사람들은 낙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이러한 모습과는 다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겉사람은 비록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할 때 날마다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


또 성도들이 ‘낙심할수 없는 이유’는 마지막 때가 되면  둘째, 지금 우리에게 있는 환난은 잠시일 뿐이고 후에 영광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7장 2절을 보시면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사모하노라 2절 말씀에 탄식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폭행을 당한 후 신음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니 아파서 신음하는 아이고 아이고 하는 의미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탄식의 연속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도 많은 탄식이 있었습니다. 교회 내적으로는 분쟁이 일어났고, 외적으로는 신앙을 지키므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중이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코로나로 인해 삶과 신앙을 지키는 데 어려움이 있고 모든 사람에게는 삶의 자리에서 각자의 탄식이 있을 것입니다. 인생은 고해입니다. 인생의 고난과 아픔과 슬픔과 질병의 바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은 죽음이 원통하고 죽음이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고생을 하다가 살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그동안 수고하고 애쓴 모든 것들이 모든 꿈들은 다 무너져 버리고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끝이 아닙니다. 이 고통과 탄식은 아주 짧은 시간을 뿐입니다. 이 후에는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이 참여할 것입니다. 마지막 때까 되면 하나님께서 두팔 벌려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렇게 우리를 맞이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당하는 고통과 고난은 잠깐 이고 이 후의 삶은 영원하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낙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성도들이 ‘낙심할수 없는 이유’는 마지막 때가 되면 셋째, 이 땅의 옷을 벗고 영원의 옷을 입기 때문입니다.
3절 말씀인데요.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사도바울은 또 이 장막을 3절에서 육신의 장막을 벗고 새로운 것으로 옷 입는 옷으로 비유를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생명이 끝이 나면 이 육신의 옷을 벗고 새로운 것으로 옷 입는다고 합니다. 종말의 때가 돼서 우리의 육체가 부활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죠? 고린도전서 15장 53절과 54절에서도 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요.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우리의 육체는 결코 쇠하여지지만 후에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에는 육체를 벗는 것이 아니라 오혀려 덧 입게 되어 부활하게 됨을 설명합니다. 이러한 일을 이루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5절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바울은 고린도후서 1장 22절에서도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와 같은 말을 합니다. 여기서 보증은 계약금 지급을 애기하는 법률용어입니다. 성도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하나님께서 부활의 날에 그들에게 영원한 몸을 주실 것을 확증하는 보증하사 이미 보증금을 내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지금 우리 안에 이미 영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증하는 분이 바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이제 오늘 말씀의 결론을 이렇게 냅니다. 9절과 10절 말씀인데요.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서서 선악간의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심판받기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예수님을 구원자와 주인으로 믿는 모든 성도들에 이 땅을 위해 살지 말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라고 권면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라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님들을 매일의 삶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혹시 세상 사람들처럼 우리의 겉사람이 낡아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낙심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성도는 눈에 보이는 겉사람이 아닌 보이지 않는 속사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땅이 전부가 아닌 저 너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 일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이 땅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주를 기쁘시게 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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