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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7월에 영화에나 나올법한 뉴스가 있었다./어떤 죄수가 석방을 3시간 남겨두고 탈옥을 시도하다가 잡혔다는 뉴스였다. 이제 3시간 후면 석방되는데, 탈옥을 한 것이다. 왜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까? 이유를 알아보니, 4년을 감옥생활을 하고 석방되어 이제 사회로 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두려움이 생겼단다. 이제 자기는 전과자가 되었는데, 사회에서 직장을 쉽게 구할수 있을까? 만약 직장을구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지? 이런 앞날의 대한 두려움이 앞서서 그러면 차라리 이 감옥에 있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하겠다고 생각해서 감옥에 더 있으려고 일부러 탈옥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오늘은 2017년의 마지막 주일이며, 마지막 날이다. 이제 내일이면 새로운 한해가 시작된다. 내년에는 지금보다 좋아질 것 같은가? 지금 뉴스에는 내년3월 이전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뉴스가 나온다./전쟁이 나면 아마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다.

 

 

본문32절에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제자들의 모습이 나온다. 왜 제자들이 놀람과 두려움 속에 있는가? 그 이유는 이들이 지금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예수님은 잡혀 죽으실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당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보기만 하면 잡아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를 고발하는 사람에게 보상을 하겠다는 상황이었다./그런데도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이다. 그런 예수님의 모습이 제자들을 놀라게 하고 두렵게 만들었다.“주님이 왜 저러시지? 지금 예루살렘에 가면 끝장인데, 왜 저러셔?”그런데 주님은 놀라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불러놓고 33-34절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내가 예루살렘에 가면 대제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져서 고난당하고 죽을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것처럼, 이들의 두려움이 더욱 커졌겠죠? 지금 주님이 가시는 길의 끝에는 고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 길을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두려움이라고는 찾아볼수 없다. 오히려 주님은 앞장서서 가시는 것이다.(32/앞에 서서 가시는데)/ ==>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으면 끝장이라고 생각하면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벌벌 떨고 있는데,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의 길을 당당하게 앞장서서 가시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앞서가시는 주님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교훈이 무엇인가?

 

 

첫째, 주님이 앞서가시는 그 길은 끝이 아니라, 그 다음이 있는 길이다.

 

 

32절을 보면, 주님은 자신이 당할 일을 다 알고 계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주님이 알고 계신 것은 그것뿐만 아니었다. 주님은 십자가가 자신의 끝이 아님을 알고 계셨다./죽음이 자신의 끝이 아님을 알고 계셨다. 어떻게요? 34절 말씀에다시 살아나리라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를 죽음에서 건지시고, 다시 살리실 것을 알고 있었고, 믿었기 때문이다./혹시 미래가 불투명해서 불안한가? 내년에 더 어려워질까봐 걱정되는가? 그러나 기억하라.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이 되시는 분이다. 우리의 인생을 시작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우리 인생의 마지막을 결정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인생의 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끝이 아니라고 하시면 끝이 아니다./우리의 끝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여러분의 인생의 끝은 사람의 손에 달려있지 않다. 누군가가 도와주었다고, 또는 누군가 도와주지 않았다고 해서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예수께서 앞서 가시는 까닭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그 다음이 있음을 아셨기 때문이다./성경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의 특징은 그 다음을 믿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다니엘이 왜 사자굴에 들어갈수 있었는가? 그 다음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아브라함이 왜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수 있었는가? 그 다음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6년전에 했던 치솔장수이야기를 다시 하겠다./어떤 사람이 지하철 1호선을 탔다. 이른 아침 인천행이어서 자리가 많았다. 자리에 앉아있는데, 신도림역에서 어떤 아저씨가 가방을 들고 탔다. 아저씨는 가방을 내려놓고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 여러분, ~녕하쉽니까? 제가 여러분앞에 나선 이유는, 가시는 걸음에 좋은 물건 하나 소개해 드리고자 이렇게 나섰쉽니다. 그럼 물건을 직접 보여드리겠쉽니다. , 플라스틱 머리에 솔이 달려 있쉽니다. 이것이 무엇이겠쉽니까? , ~솔입니다. 왜 이걸 가지고 나왔겠쉽니까? 물론 팔려고 나왔쉽니다. 한 개에 200원씩 다섯개 묶여있쉽니다. 얼마이겠쉽니까? ~원입니다./뒷면 돌려보겠쉽니다. 영어가 적혀 있쉽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이게 무슨 뜻이겠쉽니까? 수출했다는 겁니다. 수출이 잘됐겠쉽니까? 폭삭 망~했쉽니다. 그래서 들고 나왔쉽니다. , 그럼 여러분에게 한묶음씩 돌려보겠쉽니다." 그리고 아저씨는 칫솔을 한묶음씩 사람들에게 돌렸다. 그러더니 그 아저씨는 다시 입을 열었다. ", 여러분, 여기서 제가 몇 묶음이나 팔수 있겠쉽니까? 여러분도 궁금하쉽니까? 저는 더 궁금합니다. 잠시후 결과를 알려드리겠쉽니다." 칫솔은 모두 네묶음이 팔렸고, 그 아저씨는 이렇게 마무리했다고 한다. ", 여러분, 칫솔 네묶음 팔았쉽니다. 총매상이 얼마이겠쉽니까? 칫솔 다섯 개짜리 네묶음 매상이 겨우 4천원입니다. 제가 쉴망했겠쉽니까? 안했겠쉽니까? 물론 쉴~망했쉽니다. 그렇다고 제가 여기서 포기하겠쉽니까? 절대로 포기하지 않쉽니다. 저는 다음칸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 아저씨는 칫솔가방을 들고 유유히 다음칸으로 갔단다. 남아있던 사람들은 모두 뒤집어졌다.

 

==>그런데 여기서 그 아저씨의 마지막 말이 정말 중요하다. 자기에게는 다음칸이 있다는 것이다. 칫솔 네묶음,즉 칫솔 20개 팔아서 4천원을 번다면 물건 사온 원가 빼고 얼마나 남겠는가? 그것으로 가족을 부양할수 있겠는가? 그러나 칫솔장수는 절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다음 칸이 있기 때문이다./칫솔장수가 실망할수밖에 없는 상황속에서도 다음칸이 있기에 실망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우리에게는 누가 있는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신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 닥친다고 해도, 절망하지 말고, 그 절망적인 상황을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라. 29:11/"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그 다음이 있음을 믿는 앞서가는 성도가되라

 

 

둘째, 주님이 앞서 가시는 그 길은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다.

 

 

서두에 말씀드린 탈옥수처럼,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성경에 나온다. 바로 출애굽한 이스라엘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백성을 불쌍히 여겨 모세를 통해 해방시켜주시고, 가나안땅으로 가도록 인도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가나안땅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홍해길과 광야길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어떤 반응을 하는가? 애굽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차라리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 이스라엘이 걸었던 홍해길과 광야길은 그들이 반드시 걸어야만 했던 길이다. 그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걸어야만 했던 길이다./주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길은 주님께서 반드시 가셔야만 했던 길이었다. 그 길에 비록 고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주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그 길을 가셔야만 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면서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 있다. 그 길은 앞서 가시는 주님을 따라가는 길이요, 십자가의 길이요, 고난의 길이다.

==> 왜 우리가 그 길을 가야만 하는가? 왜냐하면, 주님이 앞서가시는 그 길은 겉으로 볼때는 십자가의 길이요,

고난과 죽음의 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구원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요, 영광의 길이요, 승리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 길은 저와 여러분이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다.

 

제가 요즘 좋아하게 된 시인이 있는데,“도종환시인이다그의 시 중에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이라는 시가 있어서 소개한다.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면/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가지 않을수 없는 고난의 길은 없다. 지금 나의 나된 것은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을 거쳐 여기까지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난 1년간 고난이 있었다고, 실패가 있었다고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라.

그 길은 여러분이 가지 않을수 없었던, 가야만 했던 길이다.

내년 2018년에 어떤 길을 걷게될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어떤 길을 걷더라도 그 길 또한 우리가 거쳐야만 하는 길임을 믿으라.

 

 

셋째, 주님이 앞서 가시는 그 길은 주님보다 앞서가면 안되는 길이다.

제자들은 앞서가시는 주님을 보면서 놀람과 두려움 속에 따라갔다/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하는가? 31:8/주님이 앞서가시면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1:30,33/하나님은 앞서 가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앞서가신다는 것은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뜻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앞서가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주님보다 앞서 갈 때가 더 많다는 것

 

 

한국에 이현주목사라는 나이든 남자목사님이 계신다./이분이 한번은 목포에 있는 디아코니아 자매회라는 개신교 처녀들이 수도하는 공동체에 가셨더란다. 거기에 큰 뒷동산이 있는데,“14처 묵상이라고 있단다.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묵상하는 곳이다. 대제사장집에 끌려가셨다가, 그 다음에 빌라도에게 재판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구레네시몬이 대신 십자가 지고, 등등 그리고 십자가 달리시고, 무덤에 안장될때까지의 과정을 14곳으로 나눠서 각각 멈춰서 묵상하는 것이다. 매년 수난절이 되면 금요일에 14처 묵상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전국에서 매년 200명이 참석한단다./목사님이 그곳에 머물고 있었는데, 마침 성 금요일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기도를 맡은 목사님이 사고가 생겨 도착하지 못했다. 지금 기도한 후에 출발해야 하는데, 기도회 인도자가 없으니까, 거기 참석한 이현주목사님에게 대신 기도를 인도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이현주목사님이 기도를 어떻게 했냐하면,“주님,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고난의 발자취를 밟으면서 묵상하며 걷겠습니다. 우리가 이 길을 걷는 동안 우리 각자에게 한 마디 말씀만 들려주십시오. 우리가 가슴에 새기고 평생 붙들고 갈수 있는 말씀 한마디만 들려주세요.”기도를 마치고 출발했단다. 출발지에는 나무로 깍은 십자가가 50여개가 있어서, 메고 싶은 사람은 메고 올라갔단다. 목사님도 뒷줄에 서 있다가 십자가를 매려고 하는데, 질만한 십자가는 벌써 다 들고 갔고, 무거운 십자가만 남았단다. 할수없이 그중에서도 제일 가벼워 보이는 것을 들고 가는데, 너무 무거웠단다. 산을 올라가면서 마음속으로 기도하는데,“주님, 한 마디면 족합니다. 제가 명심하고, 가슴에 새기고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소중한 말씀 한마디만 들려주세요”/그런데 계속 기도하는데도 안들리는 것이다. 안들려요. 이럴 때 조심해야 할 것은 안 들린다고 해서 낙심하지도 말 것이고, 빨리 들으려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더 조심해야 할 것은 내가 답을 궁리하면 안 된다. 근사한 답을 생각해내면 안된다./그런데 우리 속에 있는 자아가 얼마나 머리가 좋은지, 내가 예수님의 말씀을 만들어서, 예수님의 말씀인양 나에게 들려준다. 여기에 넘어가는 사람이 많다./내가 만든 대답. 이게 우리 마음속에 들어온다. 그래서 기도할 때는 계속 머리를 비워야 한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를 의심해야 한다. 왜요? 내가 만든 답일수 있으니까. 그럼 하나님 음성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아는가? 그냥 알게 된다. 듣는 순간 그게 하나님 음성인줄 본인이 안다./하여튼, 이현주목사님이 산의 중간쯤까지 올라가는데도 아무것도 안들려요. 떠오르는 생각도 없고, 들리는 음성도 없다. 그러자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단다. 왜냐하면, 자신이 기도인도할 때,“우리에게 한마디 말씀을 들려주세요하고 기도했는데, 끝나고 나서, 어떤 사람이 목사님은 어떤 말씀 주셨나요? 물으면,“못들었습니다.”그러면 창피하잖아요? 그게 염려가 되었단다./그래서 끝나고 나서 사람들이 나에게 무슨 말을 들었냐고 물을 것이 걱정이 되서, 더 귀를 기울였대요. 거의 정상을 올라갔는데, 겨우 한 말씀을 주셨단다.“나를 따르라너무 익숙한 말, 너무 자주 듣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건 아닌 것 같았단다. 그래서주님, 이건 제 생각이죠? 이거 말구요. 다른 말씀을 주세요하고 사양했단다. 또 올라가요. 계속 침묵하고, 정상에 올라가 십자가를 묵상하는데, 아까보다 더 분명하게 주셨다.“나를 따르라그래서아니, 조금 전에 제가 아니라고 했잖습니까? 이거 말구요. 주님, 이것은 특별한 경우 아닙니까? 1년에 한번 하는 기회에 십자가를 지고 가는 특별한 일을 하는데, 전부터 맨날 듣던 말씀을 주시면 어떻합니까? 좀 스페셜한 말씀을 주셔야죠. 이건 아닙니다.”또 사양을 했단다. 뭔가 기발한 말씀, 새로운 말씀을 원했단다. 이제 산에서 내려가 무덤으로 내려가는 장소에 이르렀다. 이제 거의 끝나가는 상황이다. 그래서 마음이 급해서주님, 한 말씀 주십시오.”그러자 조금 더 분명한 말씀을 주셨다.“나를 따르라똑같은 말씀을 세번 들었단다. 그런데 그 말씀 뒤에 주석을 간단히 붙여주셨단다. 하도 못알아들으니까 말이다.“내 앞에서 자꾸 깝죽거리지 좀 말아라그러셨단다.“네가 뭘 아냐, 네가 어디까지 볼수 있느냐? 쥐뿔도 모르면서 네가 감히 내 앞에서 걸어가고 있느냐? 나를 따르라는 이야기는 내 뒤로 물러서라는 말이다.”==>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주님이라고 호칭한다. 그러나 정말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계신가? 그분을 정말 내 인생의 주인으로 대접해 드리고 있는가?

 

얼마전 우리 교회는 희망구역신청서를 받았다. 1지망, 2지망, 3지망을 쓰게 했다. 왜냐하면, 신청자가 한사람만 고집하지 않아야 구역편성이 쉬워지기 때문이다/그런데 신청서를 쓰신 분의 5분의 1 정도는 1지망부터 3지망까지 한 사람의 이름만 적었다. 그 의도가 무엇인가?“나는 이 사람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이다.“내가 원하는대로만 해달라것이다. 저는 솔직히 실망했다./새신자가 아닌 분들 중에, 그러면 안되는 분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 아직도 연약함이 그를 붙들고 있구나. 안타까웠다./우리는 주님을 믿는다고 한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말씀앞에 아멘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인간관계조차도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리지 못하고, 내 손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다./그런데 어떤 성도는 신청서를 쓰지 않았는데, 그 이유를 들어보니,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겠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정해주시는대로 가겠다는 것이다. 제가 감동을 받았다. 그분은 앞서가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따라가는 사람이다. ==> 우리는 일상생활속에서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주님을 왕따시키고, 자기 마음대로 결정짓는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여러분, 내년에는 그러지 맙시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라.“나를 따르라. 내 뒤로 물러서라. 앞은 내가 선다. 내가 길도 알고, 답도 안다. 네가 어디로 가야 할지, 네가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잘 안다. 그러니 너는 내 뒤로 물러서서 나를 따르라.”

2018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앞서가시는 주님을 따라가라. 앞서가시는 주님은 우리의 그 다음을 준비하시는 분이시요, 우리가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요, 앞서지 말고 따라가야 할 분이다. 앞서가시는 주님을 따라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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