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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0-9-7 큐티말씀 - 성전 정화와 권위에 대하여(눅 19:41-20:8)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2020.09.09 07:55조회 수 13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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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눅 19:41-20:8
제목: 성전 정화와 권위에 대하여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행적 중 특이한 기록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예를 예수님이 피곤하셨다. 주무셨다. 우셨다라고 하는 그런 기록들입니다. 완전한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이시에 인간과 똑같은 육체를 가지고 태어났기에 피곤하시고 지쳤을 것입니다. 또 그들의 안타까운 상황을 보고 슬퍼하셨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이 예수님이 우신 장면으로부터 시작을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살펴 보고자 합니다. 

 

첫째.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됩시다. 
41절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성을 보시고 슬피 우셨습니다. 42절에서 네 눈이 숨겨졌다고 하시고 43절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절 너와 및 그 다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헤롯 성전이 AD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처참하게 돌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폐허가 된 어제 주일 말씀중에 보셨죠? 그 통곡의 벽만 남을 정도로 처참하게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통곡하신 것입니다. 역사에 의하면 실제로 디도 장군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러 출정을 했을 때 황제가 급히 죽고 디도의 아버지가 황제가 됩니다. 그래서 디도는 속히 예루살렘 정복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야 했기에 역사상 유례를 찾아 볼수 없을 정도로. 예루살렘을 철저하게 무너 뜨렸고 원래 8만명 정도 거주했던 예루살렘에 유월절 명절을 지내기 위해 모인 100만명의 순례객들까지 더해져 예루살렘은 말 그대로 처참한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 3년간의 정복사건으로 말미암아 어린아이를 포함한 많게는 인구의 7/1이 학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티토의 예루살렘 정복입니다. 이 장면을 미리 보시고 슬피 우셨던 예수님께서는  45절 성전에 들어가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으시며 46절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셨습니다.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율법학자들의 모임인 산헤드린공의회는 70명과 대제사장 1인 71인이 운영하는 이스라엘의 입법과 사법 및 행정에다가 종교교육까지 시행하는 막강한 기관이었습니다. 로마는 그들을 식민지배에 이용하기 위해 성전세를 거두는걸 허락해 줍니다. 혹시 기억나십니까? 성전세가 얼마였는지? 반세겔입니다. 노동자 한 사람의 반일치 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요걸로 성전을 보수하고 제사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한다고 했지만 어마어마한 폭리를 취하고 있었던 거죠?  포로시대를 마치고 돌아왔던 유다 시대, 마치 가난하게 살던 제사장들이 국가공무원이 돼서 삼성에 취직한 거랑 같은 격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님께 바칠 소와 염소와 비둘기와 같은 재물 장사를 통해 엄청난 폭리를 취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걸 보시고 상을 엎으시고 채찍을 만들어 내어  쫓으시고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셨거늘 너희가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47절 그래서 원래 친하지도 않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한 마음이 되어 예수를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성도님들 성전이 지금의 교회당과 완전히 같다고는 할수 없지만 교회는 즉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기도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교회는 친목을 도모하는 장소가 아니고 영업을 하는 장소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고 그 말씀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라고 기도하는 그런 곳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관계가 회복될때에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설교자인 스펄전 목사님은 이 본문을 설명하길 “기도하는 집의 반대”는 “기도 안하는 집”이 아니라 “사탄이 통치하는 곳이다” 라고 해설을 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의지하는 겸손한 사람만이 하나님이 구원을 알고 은혜를 아는 사람만이 기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심천사랑의

 

둘째. 예수님만이 오리지널 권위자 이십니다.     
이렇게 성전 장사를 훼방하고 성전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예수님이 종교지도자들의 눈에는 가시와도 같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는 이들이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2절 인데요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님은 그 당시 유명한 랍비 밑에서 배운적도 없고 바리새파나 서기관 아니면 제사장의 가문도 아니고 대체 너는 어디서 백성을 가르칠 자격을 취득했냐는 겁니다. 대체 무슨 라이센스를 가지고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냐고 물어본 것입니다. 분명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 라고 할꺼고 그걸 문제 삼아 그들의 재판에 넘길 생각이었을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오히려 질문을 하십니다. 4절 인데요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이에 대한 해설이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하늘로부터라고 하면 왜 요한을 믿지 않냐고 할꺼고 요한이 뭐라고 증언했습니까?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신발끈 매기도 감당치 못할 분이시다.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시다. 이런 그의 말을 왜 믿지 않느냐 했을꺼고. 사람에게서 왔다. 하면 많은 백성들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요한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백성들이 돌을 던질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들이 대답하지 않기로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도 대답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성도님들 우리는 그 답을 알고 계시죠? 예수님은 무슨 권위로 지금 이 일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바로 우리 주님이 만유의 주이시고 만주의 주되신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과 본체이신 하나님 바로 그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임재하셨기에 모든 권위를 가지고 말씀도 그분을 위해 안식일 조차 그분을 위해 존재하는 모든 세상의 주인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며 그분을 경배하고 그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사실을 아는 사람과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삶은 다르겠죠? 세상은 더 나은 환경과 물질과 안정과 평화를 원하지만 단언하건대 세상에는 참 평안이 없습니다. 오직 우리 예수님 안에 있을 때에만 우리는 참 평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라고 하면 좀 어패가 있지만 그래도 남들이 생각할 때 우리의 종교가 뭡니까? 바로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크리스트의 한자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중심 핵심은 바로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의 오리지널 권위자 앞에서 대제사장과 바라새인들은 율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십자가에 못 박는 과오를 범하고 맙니다. 성도님들 영생은 유일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바라 옵기는 모든 구원의 귄위자 되시는 예수님을 아는 그것도 제대로 충만하게 알고 널리 널리 전파하는 우리들 되길 우리들의 삶과 가정이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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