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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3-11-1 큐티말씀 - 멜리데섬에서(행28:1-15)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2023.11.06 18:45조회 수 1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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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행28:1-15 

제목: 멜리데섬에서 

 

 바울이 탄 아드라뭇데노 배에서 모든 사람들 276명이 구조된 후 바울 일행은 멜리데라는 섬에서 표류를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이 사실 이 멜리데라고 하는 지명의 뜻에 다 포함되어 있는데요, 그 이름의 뜻은 끝에서 설명하겠습니다. 자기 군인들과 죄수들이 바다에서 섬으로 오자 섬 사람들은 놀랐을 겁니다. 그래도 비가 오고 날이 차니까 섬 사람들이 특별한 동정을 하면서 불을 피워 추위에 떨고 있었던 사람들을 따뜻하게 환대해 주었는데 바울이 장작으로 쓸 나무 한 묶음을 거두러 갔다가 독뱀에 물렸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칠점사 라고 하는 독사가 있다고 하던데요. 뱀에게 물리면 일곱걸음을 걷기 전에 죽는다는 뭐 그런 뱀입니다. 그 뱀에 바울이 물렸습니다. 그러자 섬에 있던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4절인데요.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원주민들이 바울 일행을 돕기는 도왔으나 바울이 뱀에 물리는 것을 보자 아 저 사람이 얼마나 악한 사람이었으면 바다에서는 구원을 받았지만 독사에 물려 죽게 될까 하는 생각을 했겠죠? 저는 아마 이 원주민들이 한국사람들이지 않았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 볼 만도 합니다. “니가 뭔 잘못이 있으니 그랬겠지?” 이게 한국사람들의 정서가 아닙니까? 마치 욥에서 달려들었던 그 친구들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담임목사님이 금요일에 말씀하셨죠? 기독교는 원인 없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데 그것이 바로 은혜와 긍휼이라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멋지죠? 가끔 우리는 수고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누리는 많은 것들을 얻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가끔씩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기도 하시고 이적을 베풀어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하고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계획아래 있으며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섬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이자 앞으로 바울의 로마 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안배이셨습니다. 

 5절과 6절 말씀을 보니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멜리데 사람들은 바울의 몸에 독이 퍼져 쓰러져 죽을 줄 알았는데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바울을 신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마가복음 16:17-18절의 말씀처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이 말씀이 먼저 떠오르죠? 믿는 자들에게는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으리라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이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사건들은 아무 의미없이 기록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 아까운 지면을 이렇게 이용한 반드시 합당한 이유가 있고 매우 정교하게 복음의 핵심이 녹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독뱀에 물린 사건도 믿는 자들이 가진 권세에 대한 요한 교훈이 녹아있음을 발견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5절과 56절에서 사도 바울은 합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지금 바울은 죽으러 가는 길입니다. 세상은 바울을 향해 죽음을 쏘아 되지만 믿는 자는 사망권세의 쏘는 죄의 화살을 맞고도 결코 죽지않고 툭 털고 일어나 꿋꿋이 살아가는 불멸의 존재임을 성경 여기저기에서 증언합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가 있으니까요? 

 잠언 24:16절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아멘. 이시죠? 시편 37편 24절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받은 성도들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납니다. 수없이 많이 넘어지더라도 아주 엎드러지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강한 손으로 영원히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아멘! 이 세상에서는 무명하여 죽은 자 같고 근심하는 자 같고 가난하여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지만...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유명한 자요 부활의 능력으로 다시 일어서는 자요 하나님을 소유함으로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바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 오늘도 내게 주신 이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사용하는 우리들 되길 소원합니다. 이 세상 할수 만 있으면 어떻하든지 사망의 독을 머금은 죄의 화살을 날려되는 이 땅에서도 믿음으로 예수님 때문에 견고한 영원한 승리자로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원합니다. 성도님들 아까 이 섬의 이름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십니까? 멜리데입니다. 멜리데란 피난처란 뜻입니다. 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 지명입니까? 바울이 일행이 탄 아드라뭇데노는 파선하여 멜리데에 상륙하게 됩니다. 바울 일행이 스스로 아드라뭇데노를 몰고 멜리데에 간 게 아닙니다. 인간인 우리는 스스로를 구조할 수 없고 피난처를 찾을 능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난파된 우리를 구조하시고 피난처로 인도하십니다. 이걸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멜리데 사건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힘으로는 난파 될 수밖에 없는 인생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피난처라고 명명된 이 섬에서 바울 일행은 원주민들이 도움으로 생명을 건집니다. 그런데 성도님들 그거 아십니까? 이 섬의 이름은 피난처 였지만 이 섬은 진정한 피난처가 될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섬은 진정한 피난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안전하고 풍족한 피난처가 될만한 조건들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 섬은 예수님을 모르기에 결국은 ”뱀에 물려 죽게 되는“ 에덴동산에서 뱀의 꾀임에 빠져 죽음을 맞이한 아담과 하와와 같은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섬 멜리데 뿐만아니라 모든 인간은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는데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섬을 구원하고자 사도바울이 뱀에 물려도 죄에게 쏘여도 죽지 않는 기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 피난처라고 하는 멜리데는 하나님의 구원의 메카니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7절과 8절을 보시면 보블리오 라고 하는 이 섬에서 제일 높은 사람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그 당시 열병과 이질은 죽는 병이었겠죠? 그런데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되 자 9절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찾아왔을 겁니다. 이 곳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이죠. 10절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11절을 보니 바울 일행이 머문 기간이 석달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바울은 이 멜레데 섬에서 3개월 동안 복음을 전하며 병자를 고치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을 것입니다. 바울 일행이 276명이라고 했으니 이 사람들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많은 병자를 치유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이 사실을 로마에 가서 전하지 않았을까요? 아드라뭇데노를 타고 태풍 유라굴라를 만나고 멜레데 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많은 이적과 병자가 치유되는 모습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가 진짜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내일 본문이지만 바울은 죄수의 신분임에도 자기 셋집에서 자유롭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감당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님들 진정한 피난처는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찾아 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를 만나 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꺠닫게 해 주시고 말씀 해 주심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험한 세상 죽음의 죄가 우리를 삼키려 하고 우리를 넘어 뜨리려고 하는 이 세상 가운데 오직 주의 은혜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원한 피난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꼭 붙잡아 사시는 우리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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