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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3-10-23 큐티말씀 - 세상을 소요케 하는 사람들(행23:31-24:9) - 주한길선생님

사무간사22023.10.27 20:01조회 수 9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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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행23:31-24:9

제목:세상을 소요케 하는 사람들

말씀:주한길선생님  

 

유대인들은 바울을 향한 고소, 고발이 여의치 않자 아예 바울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암살 계획 역시 실패했다. 천부장의 도움으로 바울은 유다 총독이 있었던 가이사랴로 바울을 호송했고, 총독 벨릭스에게 정식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닷새가 지난 후 드디어 바울의 재판이 정식으로 이루어졌다. 

비록 암살 계획은 실패했지만,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변호사로 소개된 “더둘로”는 아마 로마법에 정통하면서 유사한 여러 재판에서 승소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바울을 고발하기 위해 준비해 둔 말을 꺼냅니다. 본격적인 고발에 앞서 총독인 벨릭스를 칭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벨릭스가 유대 민족을 잘 다스려서 태평성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유대인들 모두가 벨릭스에게 감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모두 거짓이다. 기록에 의하면 벨릭스는 폭정으로 악명 높은 사람이었다. 그는 총독의 특권을 이용하여 뇌물을 받았고, 여색을 탐하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자신의 정적에 대해서는 암살자를 동원해서 잔인하게 살해하였다고 한다. 이런 사람에게 더둘로가 아첨어린 말로 시작한 것은 이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고자 했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은 24:5~6절에 집중하고자 한다. 더둘로는 바울을 고소함에 있어 먼저 한마디로 그를 ‘전염병’과 같은 ‘전염병’이라고 번역된 ‘로이몬’은 일차적으로는 ‘악역(惡俊)’을 의미한다. 

그러나 은유적으로는 라틴어 ‘페스티스(pestis)처럼 ‘악역같은 녀석’, ‘말썽꾸러기’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 단어는 바울 당시 사람의 인격을 심하게 모독하는 욕설이다. 결국  사람은 진짜 나쁜 놈이다. 

그렇다면 본문을 통하여 더둘로가 전달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잘 알려진 대로 페스트 곧 흑사병은 전염성이 엄청나게 강하고 일단 한 번 감염되면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되는 병이다. 코로나를 통해 익히 경험함

그러므로 더둘로는 바울이 전하는 도(道)를 그냥 수수방관하면 온 도시가 이 도(道) 로 물들게 되어 결국 로마제국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게 될 것이라는 점을 총독에게 부각시키며 처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더둘로의 이 고소 내용은 역설적으로 바울 당대에 복음이 얼마나 왕성하게 전파되고 있었는지를 확인시켜 준 꼴이다. 이어서 바울이 구체적으로 어떤 죄를 지었는지 3가지 죄목으로 고소함!

첫 번째로 더둘로는 “유대인을 소요하게 하는 자”라는 표현으로 바울을 군중 소요죄로 고소하였다. 

‘소요’로 번역된 ‘스타세이스’는 ‘분쟁, 폭동, 반란’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바울을 폭력 선동자, 즉 정치적 선동가로 몰고 가려는 더둘로의 의도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유대인 역사가인 요세푸스(Josephus)의 <유대 전쟁사>에 따르면 벨릭스는 소요 사건에 대하여 매우 엄한 태도를 취했다. 그는 소요 사건의 주동자뿐만 아니라 그 추종자들도 가장 잔인한 사형 방법인 십자가 형벌에 처했다. 

 

두 번째, 더둘로는 바울에 대해 “나사렛 이단의 괴수”로 고소하였다. ‘이단’ 이라고 번역된 ‘하이레세오스’ 는 ‘선택하다, 더 좋아하다’  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 단어는 주로 어떤 당파를 지칭할 때 사용되었는데, 특히 종교적인 영역에서 정통 교리에 어긋나는 것을 택한 자나 또는 그 파당을 가리킨다. 더둘로는 개신교의 성경이 번역한 대로 단순히 종교적 의미에서의 ‘이단(異端)’ 을 지칭하고자 한 것인가? 아니면 천주교가 사용하는 공동 번역이 나타낸 바와 같이 로마에 저항하는 집단으로서의 ‘도당(徒黨)’ 을 뜻하고자 한 것인가? 는 분명치 않다.그러나 더둘로는 그의 뛰어난 언변을 사용하여 아마도 유대인들에게는 종교적으로는 적대적인 ‘이단’이요, 로마인에게는 정치적인 폭동을 일으키는 ‘도당’ 이라는 사실을 이중적으로 나타내고자 했을 것이다. 더둘로가 바울에 대해 고소한 세 번째 죄목은 정치적 성격을 띤 앞선 두 가지와 달리 종교적 성격을 띤 “성전 모독죄”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인 성전을 바울이 악의로 더럽히고자 시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뛰어난 언변을 지닌 변호사였던 더둘로는 그 이전에 유대인들이 주장했던 것과는 달리 바울이 ‘실제로’ 성전을 더럽혔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왜곡된 주장은 금방 탄로 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교묘하게도 바울이 ‘성전을 더럽히려고 기도(企圖)했다.’ 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실제 법정에서는 짧게 언급하였다. 바울을 향해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씌운 죄명은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 성전 모독죄였다. 그리고 이런 죄목들을 통해 로마 총독인 벨릭스가 바울을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 되고 반드시 강력한 처벌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 자체가 강력한 전염병으로 이 세상을 소요케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영어성경 NIV는 전염병 같은 자를 특별히 “trouble-maker”로 표현했다.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키는 자! 있으면 그 자체로 신경이 쓰이고 골치 아픈 존재! 그래서 사회에서 반드시 제거되어야 할 그런 존재로 인식이 되었다.-기분이 안 좋다! 그렇다면 정작 바울은 이런 죄명을 들었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비록 종교지도자들이 자신을 고발하고 죽이기 위한 죄목이었지만 자신이 지금까지 이룬 사역에 대해 보상을 받은 기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고 그 복음은 그들이 말한 대로 성령의 능력으로 전염병처럼 순식간에 사람들의 마음에 심겨졌다. 그리고 바울의 열심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하는데 온 힘을 다하였다. 그래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그랬던 것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였고 그 영향력은 이제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에게까지 미치게 되었다. 흩어져 힘이 없던 유대인을 한데 모아 소요(騷擾, 여럿이 떠들썩하게 들고 일어나다)하게 하였다. 이 말은 세상에 흩어진 유대인들로 하여금 지금까지 믿고 따르던 하나님을 다시 기억하고 그 하나님의 도를 믿는데 자신의 온 힘을 다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과 가정과 세상의 변화는 많은 사람을 당황하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복음 전파가 분명 사람을 선동하는 “소요”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사람을 흔들어 다시 바르게 세우는 생명의 사역이다. 그런 점에서 성도들의 삶 자체가 다른 사람을 소요케 하는 선한 영향력이 되어야 한다. 이게 복음의 진짜 능력이다. 이런 복음의 능력이 우리 삶에서, 사역에서 다시 회복되길 기도한다. 사실은 사람들이 바울의 ‘죄’라는 명목아래 고발하고 있었지만 바울에게는 그 모든 고발의 내용이 “아~ 내가 이런 고발을 받을 만큼 나의 사역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가슴 벅찬 순간이지 않았을까 싶다. 하나님은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이런 마음을 주신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위해 달려 나아갈 때,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고, 누군가가 나의 의도를 오해하여 곤란한 가운데 놓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들을 하는 가운데 역으로 오늘 말씀의 바울과 같은 고발을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가 그러하신 것처럼, 성령 충만함으로 살았던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변명과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어려운 마음을 가지기보다는 “아, 내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러한 사역을 행하는 가운데 영향력이 있으니깐 이러한 사단의 방해가 있구나. 내가 그동안 잘 달려 왔나보다.” 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단도 영향력이 없는 외침은 아예 건들지도 않습니다. 그만큼 영향력이 있으니 사단과 세상이 위기감을 느끼고, 그 모든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어렵게 만들어,결국 나를 곤란한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럴 때 마다 행5:41말씀처럼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의 비난과 평가에 더 이상 주눅 들지 마시고 자신이 지금 제대로 가고 있구나 하는 확신을 좀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던 것처럼 사랑의 교회 여러분 모두가 복음을 통해 이 세상을 제대로 소요케 하는 거룩한 “Trouble Maker”같은 삶을 살아가길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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