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심천사랑의교회

2020-11-3 큐티말씀 - 가짜 신앙을 조심하라(삿18:1-20)

사무간사22021.01.08 13:30조회 수 22댓글 0

    • 글자 크기

본문: 삿18:1-20

제목: 가짜 신앙을 조심하라

 

17-21장에는 신앙적인 고백들이 난무하지만, 사실은 다 가짜들이다. 우리의 신앙은 과연 진짜인가? 가짜인가? 본문에서 가짜 신앙의 특징 두 가지를 볼 수 있다.

 

첫째, 가짜 신앙은 약속의 땅보다, 쉽고 편한 땅을 구한다.

 

우리말 성경 1-2절은 단지파가 아직 이 때까지 기업을 분배받지 못하였다고 번역했지만, 진짜 번역은 “아직 그들이 유산으로 받을 땅을 차지하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이 자리잡고 살 땅을 찾고 있었다.”이다. 여호수아 때부터 무려 300년 가까이 지난 시점인데, 왜 땅을 얻지 못하였는가? 삿1:34에 단지파는 아모리족속 때문에 산지로 몰리면서 골짜기로 내려오지 못했다. 즉, 그들은 아모리족속과 싸우지 못하였기에 이미 분배는 받았으나, 그들과 싸우지 않았기에 땅을 정복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단지파는 5명의 정탐꾼을 보내서 다른 땅을 찾게 하였다. 즉, 단지파는 하나님께서 주신 정복하기 어려운 약속의 땅보다는 정복하기에 더 쉽고 편한 땅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아모리족속이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얻기 위해서 단지파는 <마땅히 믿음으로> 싸워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마땅히 싸워야 할 싸움>을 피했다. 그리고 <다른 땅을 구했다.> 하나님이 주신 땅 말고 다른 땅을 구하는 것은 <불신앙>이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때는, 정복하기 어려운 땅보다, 정복하기 쉽고 편한 땅을 찾는 것을 <지혜>로 보겠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약속의 땅을 떠나 다른 땅을 구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며, 불신앙이다. 성도는 누가 천하를 준다고 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한다. 혹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 땅에서 <믿음으로 싸우기>보다는,<쉽고 편한 길>로 가려고 하지는 않는가? 여러분, 힘들어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것이 진짜 신앙이다. 힘들어도 하나님만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진짜 신앙인이 되라.

 

둘째, 가짜 신앙은 하나님의 뜻보다, 형통을 구한다.

 

단지파의 정탐꾼들이 미가의 집 제사장에게 자기들이 가는 길의 형통여부를 하나님께 물어보라고 했다.(5절) 모두가 자기소견에 옳은대로 사는 사사기 시대에 하나님께 물어보겠다는 모습은 굉장히 믿음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주요관심사는 그저 <형통>뿐이었다. 그들은 형통을 묻기 전에 <하나님의 선한 뜻이 무엇인지>를 물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가는 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관심사는 그저 형통이었다. 17-18절에 단지파자손 600명이 라이스를 정복하러 갈 때, 미가의 집에 들려 미가가 소유한 우상들을 훔치고, 레위청년을 뺏어간다. 왜인가? 제사장과 신상만 있으면 형통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신앙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생활 속의 형통>이었다. 물론 형통을 구하는 것이 무조건 잘못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러분 모두 형통하기 바란다. 여러분 모두 성공하기 원하고, 번영하기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형통>이 문제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그저 형통만 중요하게 여기는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니다. 많은 분들이 형통하면 축복이고, 고난이 오면 저주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 중에도 오랜 시간 형통하지 않고 고난가운데 있는 분들이 많다. 반대로 하나님 없는 형통이 있다. 예수 안 믿는데도 형통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형통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이다. 단지파는 하나님 없이 형통했다. 내일 본문에 단지파의 라이스정복은 아주 수월하고 형통했다. 그러나 그들의 형통은 하나님없는 형통이었다. 하나님 없는 단지파의 형통의 끝은 멸망이었다. 하나님 없는 형통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을 명심하고 형통을 구하기 앞서,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복된 성도가 되라.

    • 글자 크기

댓글 달기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49 2015-9-8 새벽설교 -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삿4:1-10) 최민환 2015.09.14 182
1248 2015-9-9 새벽설교 - 믿음의 정의(삿4:11-24) 최민환 2015.09.14 298
1247 2015-9-10 새벽설교 - 하나님의 역사속에 마귀가 하는 일(삿5:1-18) 최민환 2015.09.14 355
1246 2009-10-14 수요설교 - 방언에 대해서 -1 (고전14:1-14) 최민환 2015.11.25 130
1245 2014-12-18새벽설교- 방언의 사용2-성령 하나님을 오해하지 말라(고전14:14-40) 최민환 2015.11.25 146
1244 2016--1-12 새벽설교- 광야를 살아가는 성도(눅4:1-12) 최민환 2016.01.26 147
1243 2016-1-13 새벽설교 - 성령의 능력으로 살면(눅4:14-30) 최민환 2016.01.26 174
1242 2016-1-14 새벽설교 - 예수님처럼(눅4:31-44) 최민환 2016.01.26 203
1241 2016-2-2 새벽설교- 주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눅9:37-50) 최민환 2016.02.03 370
1240 2016-3-21 새벽설교 - 기도와 칼(눅22:39-53) 최민환 2016.03.30 134
1239 2016-3-22 새벽설교 - 시인과 부인(눅22:54-71) 최민환 2016.03.30 108
1238 2016-3-23 새벽설교 - 무죄와 유죄(눅23:1-12) 최민환 2016.03.30 149
1237 2016-3-24 새벽설교 - 예수와 바라바(눅23:13-25) 최민환 2016.03.30 249
1236 2016-3-25 새벽설교 - 정죄와 회개(눅23:26-43) 최민환 2016.03.30 129
1235 2016-3-25 금요기도회설교 - 성소와 무덤(눅23:44-56) 최민환 2016.03.30 242
1234 2016-4-19 새벽설교- 누구든지 거룩해야 한다(레12:1-8) 최민환 2016.04.19 271
1233 2017-4-25 새벽설교 - 위기에 대한 성도의 반응(시83:1-18) 최민환 2017.05.07 92
1232 2017-4-28 금요기도회 설교 - 성도의 모든 근원(시87:1-7) 최민환 2017.05.07 97
1231 2017-4-26 새벽설교 - 주님만이 복이다.(시84:1-12) 최민환 2017.05.07 103
1230 2017-4-27 새벽설교 - 성도가 드려야 할 기도(시85:1-13) 최민환 2017.05.07 120
이전 1 2 3 4 5 6 7 8 9 10... 67다음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