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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2-3-21 큐티말씀 - 너의 죄가 아닌 우리의 죄(스9:1-15)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2022.04.02 17:39조회 수 4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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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스9:1-15 

제목: 너의 죄가 아닌 우리의 죄

 

 1차 포로 귀환에 이어 2차 포로 귀환이 이어집니다. 어제 본문에서 어렵게 도착을 하고 정착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기쁨으로 끝이 납니다. 보통 세상 역사나 소설 영화는 그 다음이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됩니까? 에스라와 일행들은 어려움을 뚫고 하나님의 은혜로 성공적으로 정착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 이런 전개가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렇게 끝이 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뿐만 아니라 모든 성경은 세상 역사처럼 인간의 가능성을 인간을 찬양하는 것으로 끝 맺지 않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인간은 절대 안되는 걸 강조하는 것이 성경의 관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을 읽기 싫어합니다. 이 세상과 다른 극명한 차이를 좀 이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말씀도 한번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1절 ‘이일 후에’란 말은 2차로 귀환한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기쁨의 번제를 드리고 난 후의 일입니다. 지도자들이 에스라를 찾아와서 이스라엘이 행하고 있는 악한 일을 고백합니다. 그 악행이란 가나안 족속의 딸들과 결혼을 하고 그 여인들의 우상까지도 받아들이는 죄를 범했는데 심지어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야 할 제사장과 레위인들 조차 이 일에 앞장 섰다는 고발을 들었습니다. 성도님들 이 말은 국제 결혼을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 본문을 이렇게 이해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도 이방인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도 룻도 요셉도 모세도 다윗도 이방인과 결혼했지만 신앙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이 말의 원래 뜻인 출애굽기 34장 15절과 16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는 삼가 그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하게 섬기며 그들의 신들에게 제물을 드리고 너를 청하면 네가 그 제물을 먹을까 함이며” 16절입니다. “또 네가 그들의 딸들을 네 아들들의 아내로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며 네 아들에게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이 명령은 하나님은 모든 이방민족을 멸하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가나안 일곱 족속을 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명령이셨습니다. 이 민족들과 함께 혼인하지 말 것을 강하게 명령하신 내용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완전히 준행하지 않아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해 왔습니까? 지금도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을 계기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를 삶으로 행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이 방백들의 보고를 들은 에스라는 기가막혀서 겉옷과 속옷을 찢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뜯으면서 주저앉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빌론 포로로 잡혀갔던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기 때문인데,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의 풍습을 따르고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인데, 그렇게 70년간 징계를 받으면서 용서를 받아 예루살렘에 도착을 했으면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오직 하나님만을 열심히 섬겨야지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고 이스라엘은 다시 범죄하고 만 것입니다. 앞서서 본 것처럼 에스라는 단순한 성전 재건에만 초점을 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성전이라는 외형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세우려는 교육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2차 귀환시에 그 교육을 담당할 레위인들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육에 대한 열망이 시작되기도 전에 들려온 것은 유대인들이 이미 기본을 잊고 있다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세우려 해도 이미 가정마다 깊은 이방의 우상숭배가 뿌리 박고 있다는 참담함 앞에서 에스라는 회개합니다. 

 

 에스라는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에스라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이런 기도를 드릴까요? 성도님들 에스라가 잘못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에스라가 오기도 전에 발생했던 일입니다. 사실 이 일을 위해서 에스라가 왔습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너희 죄라고 하지 않고 우리 죄라고 고백합니다. 이게 참 중요한데요. 신앙은 ‘나’가 아닌 ‘우리’라는 보편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 다시오. 한 개인의 문제는 한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 그리고 공동체 전부에 미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는 나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결론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오늘 본문에서 29번이나 우리 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다니엘이 그리고 예레미야가 민족의 죄와 아픔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꼈던  것처럼 오늘 에스라도 난 아니야. 난 안그랬어. 라고 자신의 결백함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하나로서 백성의 죄를 고백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죄 때문에! 우리와 왕과 제사장들까지 죽거나 사로잡혀갔었던 어두운 과거를 말합니다. 이제는 생각하지 않고 싶은 그 과거가 과거로 그치지 않았음을 이제 다시 현실이 되었음을 막 돌아온 시간에 다시 고백해야 하는 아픔이 에스라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이미 죄 다 짓고, 벌 받고, 다시는 안 그럴줄 알았는데!  또 그 악행이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 에스라의 마지막 기도문장은 오늘의 우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죄악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반복되는 죄악 말입니다. 은혜와 덕을 입었던 것을 잊고 배신합니다. 인간은 징계로도 바뀌지 않습니다. 벌을 받았다고 바뀌지 않습니다. 그럼 이제 모든 게 끝인 겁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고 에스라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실 너무나 죄송해서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라는 말 조차 할수 없는 부끄러움이지만. 그 와중에도 하나님의 행하신 업적과 일을 찬양하는 에스라입니다. 하나님이시여~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징벌 중에도 터를 잡고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살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자비로 살아왔고 이제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하셨다는 겁니다. 에스라는 할수 있는게 없어서 이스라엘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되돌아봅니다. 땅도 성전도 잃고 이방인의 땅에서 노예로 살게 하셨지만, 끝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내버리지 않으시고 회복시켜주신 은혜를 고백합니다. 페르시아 왕들, 고레스, 다리우스 아닥사스다에게 사랑을 받아 땅과 성전을 되찾았고 안전한 보호를 받았지만 그것은 결국 하나님께로 받은 사랑과 은혜였음을 에스라는 고백합니다. 에스라는 그러한 은혜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주님의 계명을 저버린  죄를 지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지만 배은망덕한, 이스라엘, 더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자격도 없는 이스라엘이라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차마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라고 말할수도 없는 그런 비참한 통곡속에서 에스라는 그저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도님들 에스라는 오늘 그 연약함과 두려움 앞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와같이 기도하길 원합니다. 에스라가 너의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의 잘못이라고 말하며 회개하는 이 마음을 우리가 배우게 되길 원합니다. 연약함 가운데 다시금 주님의 은혜를 바라는 이 마음이 우리와 우리 교회와 성도들과 자녀들에 대를 이어 기억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세상은 인간의 희망을 노래하고 찬양하지만 우리는 인간의 무능과 죄악 속에서도 찾아오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회복은 시작합니다. 바라옵기는 모든 성도님들 세상에서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서 정답을 찾으시는 여러분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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