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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0-2-15 큐티말씀 - 요단강 이전과 이후(신27:1-26)

사무간사22020.04.08 07:28조회 수 2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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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27:1-26

제목:요단강 이전과 이후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요단강을 건넜을 때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해야 할 일은 큰 돌들에 석회를 바르고 율법의 모든 말씀을 돌에 기록하고, 그 돌을 가져다가 에발 산에 세우고 거기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다. 또한 에발산과 그리심산에 열두지파가 나눠 서고, 레위지파가 저주의 말씀을 선포할 때 모든 백성은 아멘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 후에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본문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

첫째, 요단을 건넌 후에 돌들을 에발산에 세우는 이유가 무엇이며(4), 그리심산이 아닌, 에발산에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라는 이유(6-7)가 무엇 때문인가?

12-13절에 의하면 그리심산에서는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하라고 하셨다. 한마디로 에발산은 저주의 산이며, 그리심산은 축복의 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요단강을 건넌 후에 율법을 기록한 돌들을 에발산에 세우고, 그곳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고 명령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에발산에 세우시는 이유는내가 바로 죄인이며, 내가 바로 저주받아 마땅한 사람이다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것이 바로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을 살아가는 성도의 사고방식이어야 했다. 요단강 이전의 세상에서는 죄가 죄가 아니었다. 은혜로 사는 땅이 아니라, 자기 힘과 노력으로 사는 곳이 요단강 이전의 세상이다. 그러나 요단강 건너의 땅은 <자기 죽음>이 요구되는 땅이다. 은혜가 은혜되기 위해서 내가 죽어져야 하는 땅이 요단강 건너의 땅이다. 그런데 어떻게 죽어지는가? 자기가 얼마나 악하고 더러운지를 깨닫게 될 때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의 경험이 있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악함과 약함과 더러움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율법이 기록된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악하고 더러운가를 절실히 깨닫고 스스로 '나는 저주받아 마땅한 인간이다'는 고백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 이것이 에발 산에 서는 것이며, 저주받아 마땅한 나는 오직 거룩한 제물(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로서만 살 수 있다는 의미로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다.

둘째,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두편으로 나누어 에발산과 그리심산에 서게 하실 때에, 축복의 말씀이 아닌, 저주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는가?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말씀앞에 모든 백성은 아멘을 하라고 요구하시는가? 저주에 대해 아멘하라는 것이 이해가 되는가?

15-26절까지 총 12가지 저주를 선포하게 하신다. 이것은 12가지만 잘 지키면 된다는 뜻이 아니다. 본문의 12가지는 신명기 전체의 내용을 압축하거나 대표하는 것들이다. 12가지 저주의 내용을 축약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고, 더 짧게 줄이면 <사랑>이다. 하나님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 사랑하는 것으로 보신다. 반대로 하면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된다. 그런데 성경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사랑은 곧 이웃사랑이며, 이웃사랑이 곧 하나님사랑이다. 따라서 요단강을 건너기 전의 세상과 요단강을 건넌 후의 세상의 차이는 <자기 사랑><이웃 사랑>으로 구분된다. 즉 요단강을 건너기 전의 삶은 자기 사랑,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이었지만, 요단강을 건넌 후의 삶, 즉 예수 믿는 성도의 삶은 자기사랑이 아닌 이웃사랑이 기준이 되는 삶이어야 한다.

저와 여러분은 어떤 세계를 살아가고 있으며,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자기중심과 자기사랑을 내세우며 사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저주를 알기에,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에 하나님 중심,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가?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복있는 성도가 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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