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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1-2-5 큐티말씀 - 초막절, 진짜 주인공이 밝혀지다(요7:37-53)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2021.05.08 19:50조회 수 20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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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7:37-53
제목: "초막절, 진짜 주인공이 밝혀지다"

 

오늘 본문 시작인 37절 말씀을 보시면,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이르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명절은 초막절”을 의미합니다. 초막절 아마도 마지막 날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서, 춤을 추고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날을 보낼 것입니다. 축제 마지막 날은 최고의 절정을 이루는 가장 기쁘고 즐거울 때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방송 사고가 납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셨습니다. “서다”로 번역된 히스테미는 아주 강력하게 적군을 대응하기 위하여 대치하는 듯한 군사용어로도 사용됩니다. 즉 아주 확고한 자세를 연상시키는 말입니다. 그렇게 서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성도님들 한번 상상해 봅시다. 축제 마지막 날이라, 굉장히 시끄러운 음악에 음식과 물, 포도주, 춤, 노래, 등 모든 것이 풍족한 상황에서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입니까? 맛있는 음식과 맛있는 포도주가 많은 이 때에 그 누가 목이 마르겠습니까? 지금 사막에서 명절을 보내는 것도 아니고, 광야에서 초막절을 보내는 것도 아닌데.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그랬으니? 오늘 본문은 이런 초막절 이야기로 시작을 합니다.

 

첫째, 내게로 와서 마셔라!!
초막절에 대한 최초 언급은 먼저 레위기 23장 34절 이하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 42-3절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이렇듯 초막절은 애굽으로부터 해방되어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면서 “초막” 즉, “장막”에서 살았던 것을 기념하여 구원과 해방을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초막절 기간 동안, 매일 아침 제사장들은 행렬을 지어서 신전에서 실로암으로 갑니다. 그리고는 실로암에서 물을 길어서 신전으로 돌아와, 희생제사를 드렸던 제단에 그 물을 뿌립니다. 왜, 생수를 떠다가 신전 희생 제단에 뿌렸을까요? 반석에서 샘물을 내셔서 조상들의 목마름을 달래어 주셨던 그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사랑을 감사하며 기념하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들이 실로암에서 물을 길었다는 것은 언젠가 광야에서 샘물을 마시게 하셨던 우리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어 주셔서, 참된 생수, 생명의 강수를 흘러 내리게 해주실 것이라는 종말론적 기대감을 표시하는 예식이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 7절에,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 “보냄을 받은 자” 즉, 언젠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메시야가 우리 앞에 나타나서 우리에게 참된 생수, 진실의 생명수를 부어 주실 것이라는 메시야적 기대감을 드러내는 행위였습니다. 이제 감이 오시죠? 왜? 예수님이 초막절 마지막 날, 가장 절정에 이른 날에 일어서서 외치지 않을 수 없었던지, 그분의 마음을 이해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냄을 받은 참된 실로암,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진정한 메시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하늘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전서 10장 4절에서, 조상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에 반석에서 물을 마셨는데, 그 반석은 다름 아닌 바로 그리스도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초막절의 주인공은 보냄을 받은 그리스도입니다. 참된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 본인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여러분, 내가 바로 실로암에서 솟아는 생명수 메시야입니다. 내가 바로 반석입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내가 바로 초막절의 주인공, 참된 반석, 샘물, 영원한 생수입니다! 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이것이 37절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의 의미입니다.

 

둘째, 초막절의 의미를 잃어 버린 이스라엘 사람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생각 해봐야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 와서 마시라고 하였을 까요? 그것도 이처럼 기분 좋은 축제 기간에. 목도 전혀 마르지 않은 풍성한 축제 때에 왜 그런 말을 하셨을까?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말씀하셨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신명기가 잘 담아 냅니다. 신명기 16장 13절-15절을 보시면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신명기에 의하면, 노동과 수확을 기뻐하고 감사하고, 모두가 즐거워하며 함께 하는 거류자들도 기뻐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정말 기쁨의 잔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출애굽 때의 생활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이들은 실로암에서 물을 길러 왔습니다. 그리고 물을 제단에 뿌렸습니다. 이것은 분명, 출애굽이라는 해방 구원 그리고 광야에서 하나님과 함께하심, 광야에서 반석으로 생수를 주심, 다시 오실 메시야를 소망하는 그런 예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을 하고 난 후, 일곱째 달, 초막절이 가을 수확기와 겹쳐지는 9-10월이 되면서, 초막절 본래의 의미가 조금씩 변형되었습니다. 애굽에서 해방된 구원받은 것, 광야에서 그들과 함께하신 하나님을 기념하는 축제에 가을 추수와 수확 축제가 더하여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은 초막절이 가지는 출애굽적 의미보다도 메시야를 대망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는 그런 마음보다 현재 “수확 감사”에 더욱 강조점을 두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그 물을 구원의 반석에서 주는 물이 아닌 하늘에서 내리는 비로 바꿔 버렸습니다. 농사 짓는 사람들에게는 늦은 비와 이른 비가 때에 맞추어 내려줘야만 일년 농사를 성공할수 있기에 비는 제일 중요한 요소였을 것입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초막절은 더 이상 구원의 기쁨보다도, 내 농사가 될 되게 해달라는, 내 사업이 성공하도록 비는 오늘날의 기우제와 같은 성격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입니다. 주객이 전도되었습니다. 본질을 잃어버렸습니다. 구원에 하나님에 대한 감사, 메시야에 대한 소망 보다도, 올해도 비를 내려 주셔서 우리가 수확하였습니다. 내년에도 적기에 비를 내려 주셔서, 풍작을 이루게 하옵소서! 자신들의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기복적 기우제로 변해 버린 것이 예수님 당시의 초막절이었습니다. 물론 이것 또한 살아가는데 필요하다면 필요할 것입니다.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출애굽이라는 구원 사건에 대한 감사, 그래서 메시야 재림에 대한 소망이 첫번째가 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차원에서 구원에 대한 영적인 관심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한 명도 반응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고 지금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우리는 목 마르지 않아.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충분히 살수 있어 우리의 종교와 유대인의 능력으로 우리의 목마름을 해소해왔어!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마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제자들 조차 예수님의 이러한 생수 초청 발언을 황당해 하고 부끄러워 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 그 어떤 누구도 예수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감사하는 제목은 무엇입니까? 환경입니까? 조건입니까? 오늘 우리들은 여전히 메시야에 구원에 대한 뜨거운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은 모르겠고. 한해 풍성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열망이 자리 우리 가운데 잡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옆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영원한 반석이신 그래서 그 반석에서 생수의 강이 되어 올 한해 그리고 영원토록 우리를 이끌어 주실 예수님과 함께 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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