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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1-2-1 큐티말씀 - 떡본 사람들의 두 가지 반응(요6:60-71)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2021.05.06 16:06조회 수 7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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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복음 6:60-71

제목: 떡본 사람들의 두 가지 반응 

 

오병이어 사건 이후,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라 나섰을 때, 예수님은 그 무리들을 향해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란 다름 아닌 “생명의 떡”이었고, 그것은 “참 떡”,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떡”이신 바로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말을 하면서도 참 웃기는 이야기죠? 이걸 교회 첨 나온 사람이 들었다고 칩시다. 아마 황당해 할 것입니다. 이것들이 미쳤나? 오늘 본문도 이와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어제 본문 54절에서 예수님은 자기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심으로  “그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한다고” 고 선포합니다. 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것을 두 가지의 반응으로 정리해 볼수 있는데요. 

 

첫째, 어렵도다. 하고 예수님을 떠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6장에서 예수를 처음에 따랐던 자들을 성경은 “무리”라고 표현합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 이상의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신 이후, 무리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예수를 따라 다녔습니다. 이 무리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을 왕으로 모신다면 분명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에 대항할 수 있을 것이며, 새로운 참된 나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다윗의 뒤을 잇는 강한 나라가 되어 우리는 떡 걱정 없는 풍요로운 나라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왕국을 거부하신 예수님은 가버나움 회당에서 ‘하늘로부터 오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고, 그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먹고 마셔야 하는 ‘참된 양식’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60절입니다. “제자들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그러면서 66절에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이것이 첫번째 반응입니다. 첫째 사람들인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 사람들은 오병이어의 사건을 계기로 예수님이 너무 좋다고 따라 다닌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배를 타야 하는 수고를 마다 않고 밤새 또는 새벽 같이 예수님을 따라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왜 갑자기 떠나 버립니까? 그들이 떠나는 이유는 그들은 영원히 먹고 살만한 육체의 떡을 원했는데 예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떡을 먹어야 한다고 하니, 그리고 그 떡이 내 육체와 내 피라고 하니 도저히 이해가 안되기에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기에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떠나버린 것입니다. 60절입니다.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그런데 오늘 본문 60절부터는 무리도 아니고, 유대인도 아닌 “제자들”이 등장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제자들”이란 단순히 12제자들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66절에 많은 제자들이 떠나갔다고, 언급하며, 70절에 보시면,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분명하게 제자들과 12명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60절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제자이란 말 그대로 배우다, 따르다, 지식의 대상과 함께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행전에는 그리스도인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제자들”이라 불리웠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제자들,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아 이제 예수의 삶을 따라서 살아가고자 하는 제자들이 그 예수를 거부하는, 그 예수를 대항하는 장면이 오늘 본문이라는 겁니다, 그들이 예수를 거부하면서 떠나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60절을 다시 보시면, “제자들이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어렵다로 번역된 헬라어 “스크레로스” 스트레스의 어원이 되는 말입니다. 완전히 메말라 버린, 드라이(dry)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지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에 걸린다, 너무 거칠고 역겹고 사나워서 도무지 따를 수 없는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말하자면, 자신들의 삶의 방식 상식에 비추어 보니 도저히 기분 나뻐서 예수를 따를 수 없다 아무도 그말은 순종할 수 없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말하는 내용이 자기들의 가치관이나 인생관, 또는 그들이 살아온 역사와 기대치와 너무 달랐던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복음은 그들에게 “걸림이 되어” 예수님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배불리 먹고 행복한 삶이라는 방향을 정해놓고 예수를 쫓아 왔는데,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한다는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해야 한다는 희생의 복음 무능한 복음을 전하니, 뒤통수를 맞은 것입니다. 기껏 환호하고 쫓아왔더니 사기꾼이네 이런 기분이었다는 겁니다. 지금 예수님은 불특정 다수인 무리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회당에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교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좋아한다며 따랐던 제자들에 의해서 그 말씀이 무참히 거부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제자 중에 가롯 시몬의 아들 유다가 있었습니다. 이는 열심당 출신으로 무력으로 독립운동을 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과격급진독립주의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선택하신 방법은 평화의 방법 무능한 방법 십자가 지는 패배자의 방법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기에 예수님을 팔아 버린 것입니다.  

 

둘째, 영생의 말씀이 계시온데. 떠날 수 없습니다. 라고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68절에 나오는 베드로의 반응 입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입니다. 물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아직 베드로 조차도 예수님과는 전혀 다른 동상이몽을 꿈꾸고 있을 정도로 예수님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맨날 혼이 납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제자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 분은 다르다. 이 분이 하는 말은 세상과 다르기에 내가 이해가 되지 않을 찌라도 그분을 따르는 것이 맞다. 이렇게 생각하며 따랐던 사람들이 바로 열두 제자였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5000명이나 먹고 배불렀지만 그중에서 예수를 따른건 많아야 몇 십명이 안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몇 십명의 제자들도 결국 그 말씀 때문에 시험에 들어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그리고는 나중에는 이들에 의해 예수를 못박아라! 고  외치는 무리가 되어 버립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도행전 2장의 사람들은 그 마음이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 했는데 사도행전 7장의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고 결국 스데반을 죽입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란 십자가의 은혜란 자녀됨이란 생명의 떡인 예수님의 살과 생명의 음료인 예수님의 피에 관한 이야기는 성령으로 감동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어려운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기적인 것죠?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것이 참으로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세상의 이성으로 증명 되어져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믿고 순종해야 하는 성령에 의한 구원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해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에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이해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기에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떠나는 많은 사람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너희도 가려느냐? 하셨습니다. 이 물음에 시몬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아멘 예수님의 물음 앞에 우리도 이런 대답할 줄 아는 우리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한 여론조사 기간에 의하면 코로나로 인한 지난 1년간 교회의 신뢰도는 76%가 하락했다고 합니다. 원래도 좋지 않았던 교회의 신뢰도는 지금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과학이 발전하고 철학과 이성이 인간이 모든지 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이 시대 가운데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어 살아야 한다는 기독교인들을 보면 참 꼴 사나올게 분명해 보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앞으로는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이 교회를 다닌 다는 것이 지탄 받는 시대가 분명히 올 것입니다. 세상은 사회는 악한 사탄 마귀는 계속 적으로 물어 올 것입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이럴 때 우리의 대답이 무엇이어야 겠습니까? 베드로의 고백처럼 “영생의 말씀이 여기 계시온데 우리가 어디로 가오리까”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님을 위해 욕 먹고 핍박을 받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우리들 되길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고백처럼 많고 많은 사람들이 아닌 그저 교회만 다니는 교인이 아닌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진정한 그리스도인 되시길 주님의ㅠ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그 은혜를 구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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