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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15-11-25 새벽설교- 방언보다 예언을 사모해야 하는 이유(고전14:1-12)

최민환2015.11.25 14:46조회 수 186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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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보다 예언을 사모해야 하는 이유(고전14:1-12)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발생한 방언의 폐단, 즉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 12-14장에 걸친 긴 이야기를 기록했다. 그러나 오늘 저는 방언보다는, 예언에 집중해서 설명하고자 한다./오늘날 예언에 대해 오해하는 분들이 많다. 요즘 이런 예언하는 사람들이 많다.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당신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목회자가 되라. 선교사가 되라. 어디로 이사 가라. 무엇을 해라. 돈을 얼마 헌금해라 그러면 하나님이 큰 복을 주신다고 하셨다.”그 말이 하나님의 예언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다가, 조금만 어려우면 그말에 혹해서 신학교 가고. 선교사 가고.집도 이사가고. 직업도 바꾸고. ==> 여러분, 이런 예언은 성경이 말하는 예언이 아니라 점쟁이가 점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것은 어쩌다 맞아도 믿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마귀도 우리를 미혹하게 하기 위해 역사할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 12월에 한국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는 홍혜선 전도사의 전쟁예언은 얼마나 미래를 예측하는 것으로만 가득 차 있는가? 그런데 그 결과를 보라. 수많은 사람들이 그 예언에 미혹되어 한국을 떠나갔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미래를 알려주는 것보다 우리를 회개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주시는 은사이다

==> 그러므로 예언은 설교, 또는 성경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봐야 한다. (고전2:6-16절을 참조하라)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이라는 말의 는 "미리 예"가 아니라, "맡을 예"이다. 말씀을 맡아두다는 뜻이다. 그런데 예언은 고전14장에 근거하면 3가지 기능을 한다./첫째는, 위로하는 것이다.(3) 핍박과 고난 중에 있는 성도를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것이 예언의 한 부분이다. 주님이 이루실 결국을 믿으라. 다시 일어나라는 것 등등이다./둘째는, 책망하는 것이다.(24-25) 설교에서 위로만 있고, 책망의 내용이 빠져 있다면 그건 설교가 아니다./셋째로, 예언은 가르치는 것이다.(31)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과 사역을 해석하고, 오늘날의 교회의 상황과 성도의 삶에 적용해서 교훈을 주고, 권면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예언이라고 한다. 

==> 그런데 바울은 왜 방언보다 예언을 더 사모하라고 했는가?

 

첫째, 자기 유익보다 공동체의 유익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2-5절은 예언이 방언보다 나은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첫째로, 방언은 이해되지 않으나, 예언은 이해가 되는 것이다./방언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다. 알아듣는 사람도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언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며, 알아들을수 있다./두번째 이유는, 방언은 자기 덕을 세우지만,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우기 때문이다. 방언은 개인적인 것으로, 자기를 세워준다. 그러나 예언은 교회를 세우고, 사람들을 세워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언이 방언보다 낫다.

 

우리가 방언하기보다 예언하기를 더 사모해야할 이유는 자기의 유익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고린도교회는 방언의 은사를 많이 받았지만, 성도간의 인간관계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심각한 분열속에 있었다. 바울은 교회를 혼란하게 하고 유익이 되지 못하는 방언보다는, 교회를 확실하게 세우고, 교회에 유익을 주는 예언이 고린도교회에 필요하다고 보았다.==> 오늘날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교회에 필요한 은사는 방언보다는 예언, 즉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이다. 우리교회는 자기의 덕만 세우는 방언보다는, 교회에 덕을 세우고, 다른 사람들을 권면하여 주님께로 바르게 인도하는 예언의 은사가 필요하다

 

은사는 섬김을 위해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기 위해 맡겨진 임무를 감당해야 하고 교회를 세워가야 한다. 지금 범죄한 사람들을 책망하며, 권면하며,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할 일꾼들이 필요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런데 우리가 방언같은 은사를 받았느니, 못받았느니하면서, 자기를 과시하고, 우월감에 사로잡혀서, 남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려고 하고, 교만해지는 것은 교회에 정말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방언을 사모하되, 예언하기를 더 사모하라./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가르치는 자가 되어서 방황하는자, 쓰러진 자, 연약한자를 일으켜 세워 바른 길로 인도하는 자가 되라.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에 유익이 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19절을 읽자./자기의 유익에 얽매이지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자.

 

둘째, 교회는 소통이 더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방언의 문제는 소통의 문제이다. 방언은 알아듣는 사람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아무리 훌륭한 말이라 할지라도 듣는 이에게 전달될 수 없는 것이라면 자기에게만 덕이 될 뿐, 교회에 덕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통역이 없으면 공예배에서 방언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는 공예배시간에 너도 나도 큰소리로 방언을 해대니,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처럼 시끄러운 소음에 불과한 것이다. 자기에게는 유익이 있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같으니, 아무 유익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사랑이 없는 것이다.

 

==> 저는 우리교회 예배가운데 외국인이 와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왜냐하면, 저 사람은 한국말을 못알아듣는데, 무슨 생각으로 앉아있을까? 누군가 옆에서 통역을 해주면 제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나 통역이 없으면 설교시간은 그 사람에게는 괴로운 시간이다. 그 사람에게 나는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는 외국인이 되는 것이다.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미국인에게 한국어로 백만번 복음을 전한다고 그 사람이 복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없다. 내가 교회에 대하여 방언으로만 말하면, 나는 교회에 대하여 외국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9절말씀처럼 허공에다 말하는 것과 같다.

 

==> 왜 방언보다 예언이 더 중요한가? 교회는 영적인 소통이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방언은 하나님과의 소통이지만, 통역해줄 사람이 없으면 28절 말씀처럼,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하나님과 묵상으로 소통하라. 그런데 교회의 진짜 문제는 성도끼리 소통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도끼리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교회는 건강하지 못한 공동체이다. 고린도교회는 성도간의 소통이 문제였다. 서로간에 사랑이 없는 것이다. 성도간에 소통이 안되요? 그럼 하나님과의 소통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언이 필요한 것이다. 예언이 뭐라구요? 책망하고, 위로하고,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이다. 말씀안에서 성도는 하나가 될수 있다.

==> 교회안에는 말씀을 통한 소통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성도가 성도다워지고, 교회가 교회다워질수 있다.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부부간에 말씀을 통한 소통이 있어야한다. 서로 알아듣지 못할 방언같은 말 일만마디보다는, 깨달은 마음으로 몇마디 말씀을 권면하고 위로할 때 부부는 소통하게 되고 가정은 새로워질수 있다.

우리는 소통이 필요하다. “워먼 쉬야오 꼬우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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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최민환글쓴이
    2015.11.25 14:47 댓글추천 0비추천 0
    방언에 대한 내용은 이전에 했던 설교들을 아랫 글에 올려놓았으니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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