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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2-10-26 큐티말씀 - 보배로운 산 돌(벧전 2:4-10)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2022.10.28 05:28조회 수 3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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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베드로전서 2:4-10 

제목:보배로운 산 돌

 

예수님은 이스라엘 땅에 메시야로 오셨지만 사람들은 율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신성모독이라는 이유로 예수님을 거부하고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사람들에게서는 버림받았으나 오늘 본문이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4절입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돌에 대한 이해가 좀 필요한데요. 오늘 본문 7절을 보시면 건축자들이 버린 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런 말씀하면 정말 죄송하지만 건축업자들은 왠간해선 건축자재를 버리지 않습니다. 나중에 꼭 필요할때가 있을 거야 하면서 쟁겨놓죠? 한국에 있을 때 여럿 봤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2000년 전 재료가 귀했던 이스라엘에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라는 말은 전혀 쓸모가 없는 재료 즉, 쓰레기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버린 돌처럼 여겨진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시키심으로 인해 ‘보배로운 산 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 돌이 ‘너무도 귀중한 가치’ 를 가졌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볼품이 없어보이기 때문입니다. 건축 폐기물처럼 전혀 가치없는 쓰레기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보배로운 산 돌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이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받은 구원입니다. 그렇기에 사도 베드로는 ‘보배롭고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라고 우리를 권면합니다. 지금 너무나 큰 박해를 받고 환란을 당하고 배신을 당해 배교하기 직전인 성도들에게 세상이 무엇이라 말하든 생명을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라는 권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이 세상이 어떻게 평가하든지 상관없이 그 어떤 것보다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두 가지를 권면합니다. 5절입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첫째. 신령한 집을 세우라. 

여기 ‘산 돌’ 은 산돌들이라고 복수형으로 표현을 했는데요 쓸모있는 돌, 보배로운 돌이 돼서 결국은 신령한 집, 즉 교회를 세우는 일에 한 부분이 되어야 하는 것을 가르칩니다. 베드로는 구원 받은 성도라면 그 상태로 만족하지 말고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 ‘신령한 집’은 영적으로 말하면 보편적인 하나의 교회, 즉 온세계의 교회가 하나님 안에서 추구하는 한 교회를 말합니다. 그리고 지상의 관점에서 말하면 ‘신령한 집’ 이란 눈에 보이는 성전 곧 지역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성도 각 사람은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연합을 이루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코로나 이후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교회가 어디인줄 아십니까? 가나안 교회입니다. 교회 안나가 성도들을 지칭하는 신조어입니다. 78%가 자기는 구원을 받을꺼다. 라고 말하지만 교회는 가지 않는 신자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 교회를 가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예배 드려도 캠핑장에서 핸드폰으로  예배를 드려도 삶에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이기에 아에 교회를 끊고 가나안 성도들이 되었습니다. 아무 곳에도 등록하지 않고 비대면으로 예배 하면서도 자기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거룩한 성도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할 신앙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갑니다. 교회에서 어떤 짐도 부담도 책임도 지고 싶지 않고, 간섭도 없이 나를 반대하거나 나를 비난하는 싫은 사람 없는 부담없는 나홀로 교인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진정한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아니기에 온전한 성도라 할수 없습니다. 오늘 베드로의 권면에 의하면 성도는 함께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감으로 진정한 교회가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시대적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황제의 박해를 피해 동족의 고발과 배신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지하로 광야로 숨어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혼자 기도하고 말씀 읽고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 어찌보면 편할수도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건 교회가 그건 성도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다닌다고 모든 사람들이 성도가 아닐수도 있는데 나홀로 예배드리고 혼자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다고 성도라 할수 있겠습니까? 월요일 본문에 있는 말을 인용해 보자면 시련없는 고난없는 믿음이 진짜일수 있을까요? 그럴수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한 믿음으로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성도들과 교제하는 삶을 살 때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연합을 이루는 신령한 집을 세우는 것 이것이 성도의 본분이고 사명이자 교회의 진정한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둘째,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라. 

 그리스도인은 ‘신령한 집’에서 거룩한 제사를 드릴 제사장이 되라. 말합니다. 앞으로 며칠 후인 10월 31일이되면 종교개혁주일 505주년인데요. 개신교와 유대교와 가톨릭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만인 제사장’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유대교이든 가톨릭이든 죄인된 인간은 하나님 앞께 나아가 자신의 죄를 사해 달라고 직접 요구할 수 없습니다. 사제나 제사장을 통한 간접적인 만남만을 가질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다릅니다. 구약 시대 성도들은 오직 레위지파에서 세워진 제사장의 중보를 통하여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으나,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고 난 신약시대 이 후로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어떤 사람입니까?  먼저 제사장은 백성의 죄를 사해주는 역할을 했던 사람입니다. 백성은 직접 하나님을 뵈올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갈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죄의 십자가를 지셨으니 예수의 이름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앞에 나아갈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제사장은 백성을 대신하여 백성의 요구를 하나님 앞에 구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을 위하여 세상을 대신하여 기도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을 구원하는 다리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무엇으로 세상의 빛이 되고 세상의 소금이 되겠습니까? 가진 것도 힘도 없고 지혜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똑같이 더럽고 부끄러운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힘입어 직접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제사장이 목사라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오늘날의 제사장은 바로 여러분인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마지막으로. 제사장은 제사를 드리는 자입니다. 우리 각자는 ‘신령한 집에서’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12: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일주일에 하루 주일에 교회에 가서 입으로 드리는 예배만으로 거룩한 산 제사, 영적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나의 전 삶과 온 몸으로 드리는 제사가 될 때 진정한 산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의 말씀과 기도 그리고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 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술에 취해 폭력과 음란에 찌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산 제사’를 말하면 웃을 것입니다. ‘거룩한 산 제사’ 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는 사람만이 할수 있는 거룩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그래서 6절 말씀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우리는 모두 인생의 집을 짓는 건축자와 같습니다. 모든 건축의 출발은 기준이 되는 모퉁잇돌에서 시작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세상이 버린 돌이지만 하나님은 그돌을 보배로운 산 돌로 삼으셔서 우리 인생의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영광의 집의 기초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철저히 외면 당하시고, 범죄자로 여김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주 예수님을 ‘택하셨고’ ‘보배롭게 하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9절에서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둔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부르신 우리를 택하시고 왕같은 제사장에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가 된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10절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아멘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지금은 하나님의 친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선포하는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그리고 우리들이 주님 주신 사명 잘 감당함으로 칭찬받는 성도 칭찬받는 교회되시길 보배로운 산 돌이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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