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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3-4-13 큐티말씀 - 주님께 인정받는 사람(막9:30-41)     

사무간사22023.04.15 21:24조회 수 3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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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막9:30-41

제목:주님께 인정받는 사람

 

첫째, 주님이 인정하시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끝이 되어 섬기는 사람이다.

 

오늘 본문에 제자들이 “누가 크냐”라는 문제로 말싸움을 했다(34절)는 것은, 제자들이 “자기 자신의 가치를 높게 여겼다”는 뜻이다. 내세울만한 것이 있기에 서로 크다고,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다툰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의 이런 모습은 <예수의 십자가를 알지 못했음>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왜냐하면 십자가 앞에서는 “누가 크냐”라는 싸움은 아예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왜인가? “십자가는 인간이 가치있게 여기는 모든 것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막8:34에서 주님은 누구든지 주님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질 것을 요구하셨다. 십자가는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만이 질 수 있다. 그래서 “믿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자격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무엇을 말하는가? “너는 은혜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너는 죄에 관해서 구제불능이야. 너는 지옥갈수밖에 없는 존재야. 너는 하나님 앞에 진노의 대상이요, 저주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야.” 십자가는 우리가 자격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십자가는 인간의 공로를 단 하나도 허락하지 않는다. 십자가는 인간을 “끝으로, 바닥으로” 몰아붙인다. 십자가를 아는 사람은 “나는 자격없는 사람이다. 나는 죄인중의 괴수(우두머리, 으뜸)”라고 고백하게 된다. 십자가는 우리를 첫째가 아닌, 끝으로 몰아붙인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아는 사람은 누가 크냐고 싸울 수 없다. 또한 십자가는 싸움의 대상을 바꾼다. 십자가를 모를 때는 제자들처럼 누가 크냐고 서로 싸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십자가를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싸우지 않고, 높아지려고 하는 자기 욕심과 싸우고, 세상의 문화와 싸우고, 마귀의 유혹과 싸우게 된다. 즉 싸움의 대상이 바뀌게 된다. 이 싸움은 십자가를 모르면 불가능한 싸움이다. 즉 십자가를 모르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삶을 살수가 없다. 주님은 “모든 사람의 끝이 되라”(35절)고 말씀하셨다. 모든 사람의 끝이란, “종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종인지 주인인지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누군가 여러분을 종 취급을 할 때 화가 나면 종의 자리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여러분을 허드렛일이나 하는 사람이라고 무시해도 내가 해야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면 참된 종인 것이다.

 

둘째, 주님이 인정하시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주님은 누가 큰 자인가를 설명하시다가 갑자기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예수의 이름으로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주님을 영접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36-37절) 여기서 “영접”은 “맞이하다. 환대하다. 기꺼이 받아들이다.”는 뜻이다. 어느 공동체든지 어린 아이 같은 성도들이 있다. 돌봐주기 힘들고, 이해하기 힘들고, 왜 저러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혼낸다고 해서 깨닫지 못한다. 또한 어린 아이 같은 성도는 섬길 줄을 모른다. 어린이는 그냥 섬김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예수께서 어린이를 영접하라는 말씀은 그런 “연약함, 부족함, 이기심, 철없음을 다 받아주라”는 것이다. 못한다고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37절)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연약한 사람, 부족한 사람, 영적으로 어린 사람을 용납하고 받아주면, 그것이 곧 하나님께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주님께 하듯 하는 것”이 바로 첫째 가는 신앙의 수준이며, 그런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제자 중 요한이 말하길, 우리를 따르지 않는 자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않음으로 금지시켰나이다(38절)라고 했다. 그런데 주님은 “금하지 말라”(39절)는 것이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무슨 뜻인가? 어린아이를 수용하고 받아주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수용하고 받아주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나보다 못사는 사람, 나보다 못난 사람은 용납해 줄 수 있다. 봐줄 수 있다. 그러나 나랑 비슷한 사람, 또는 나보다 더 잘난 사람, 더 잘사는 사람은 용납해 주지 못한다. 왜인가? 우리 안에 있는 자기중심성, 이기적인 죄성이 발동해서 경쟁의식, 비교의식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본능적으로 내 편, 네 편을 가른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다른 부서와 경쟁하고 비교한다. 또는 누가 더 잘났냐고, 누가 더 신앙이 좋냐고 경쟁하고 비교한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성도는 경쟁하거나 비교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수용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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