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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3-6-30 큐티말씀 - 교회의 정체성(대하3:1-17)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2023.07.01 18:24조회 수 4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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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대하4:1-5:1

제목:바다와 같은 은혜

 

 어제 본문에 이어 솔로몬이 만든 여호와의 성전을 설명합니다. 어제 본문에서 내부를 설명했다면 오늘 본문은 외부 마당부터 설명합니다.  성전 앞에는 놋제단이 설치되었습니다. 놋제단의 크기가 설명되어 있는데요 그 길이가 이십 큐빗, 넓이가 이십 큐빗, 높이가 십규빗입니다. 가로 세로가 지성소의 크기와 같습니다. 이를 미터법으로 환산해보면  가로 10미터, 세로 10미터인데 이 정도 크기는 테니스 코트 절반과 같습니다. 테니스 코트 안에서 선수들이 막 뛰어다니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큰 제단인 것이죠. 그렇다면 모세가 만든 성막의 놋제단과 비교하면 어떨까요? 모세의 놋제단, 즉 지금 솔로몬 당시 기브온 산당에 있는 놋제단은 가로가 오규빗, 세로가 오규빗입니다. 그러니 가로세로가 4분의 1에 불과하고 면적만 놓고 따지면 솔로몬이 만든 제단은 모세가 제단의 16배가 됩니다. 새벽이라 헷갈리시죠? 저도 문과라 죄송합니다. 암튼 크죠? 그러니 한꺼번에 많은 양의 짐승을 올려놓고 제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성막과 성전은 거대한 비유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많은 의미가 있지만 이 놋제단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비유됩니다. 짐승이 피를 흘리고 제단 위에 올려져서 하나님께 드려짐으로 이스라엘의 죄가 사해지듯이 예수님은 우리 모든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라는 제단 위에 올려지신 것이죠. 그 피가 우리의 죄를 사하고 그분에게 가해진 형벌이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 하신 것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짐승으로 드리는 제사에는 한계가 있어서 영원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정말 많이 봐준다고 쳐도 일년에 한번만 죄를 사해 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제사는 단 한 번으로 영원한 효력을 발휘합니다. 바로 예수님이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죠.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피만이 우리를 죄로부터, 그리고 죄의 형벌로부터 영원히 깨끗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놋으로 만든 물건 중 또 눈에 띄는 물건은 바로 놋 바다입니다. 바다? sea가 아닙니다. 그래서 영상으로 성경을 읽었는데요. 보신 것처럼 놋 바다는 물을 담아 놓는 거대한 그릇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물두멍은 작은 사이즈이고 바다라고 하면 큰 사이즈입니다. 지름이 십규빗이면 가로와 세로가 놋재단의 절반이라고 보면 되겠죠. 4절에는 가장 자리 아래에 돌아가면서 소의 형상이 있다고 했는데요 

이 형상은 높바다의 주물을 만들 때 아예 함께 새겨놓은 것입니다.그리고 그 바다를 바치고 있는 황소 열두 마리가 있는데요. 세 마리는 북쪽을, 세 마리는 서쪽을 향하였고, 또 세 마리는 남쪽을, 다른 세 마리는 동쪽을 향하도록 했습니다. 이 열두 마리의 소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할 겁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광야에서 행진을 할 때 일정한 진의 형태를 가지고 행진을 했는데, 이렇게 성막을 중심으로 사방에 세 지파씩 배치한 것을 연상케 합니다. 이 바다의 두께는 한 손 너비만 하고 물을 담을 수 있는 양이 삼천 밧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삼밧 밭은 현재의 단위로 하면 약 6천600리터가 됩니다. 보통 한 드럼을 200리터로 보니까 서른세 드럼 양을 채운 것이죠. 물을 담아 놓는 그릇은 이 놋바다 외에도 열 개의 물두멍이 더 있었는데요 다섯 개는 성전의 오른편에, 나머지 다섯 개는 왼편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물두멍의 용도는 번제물을 씻거나 번제에 필요한 물건들을 싣는 데 사용되었고, 놋바다는 오직 제사장들을 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놋바다는 무엇을 비유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 지성소로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십자가로 속죄의 은혜를 받았으나 우리가 죄의 권세로부터 완전히 놓여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늘 또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죄는 우리를 하나님의 품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가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늘 실수하고 늘 넘어집니다. 그런데 우리를 이 넘어짐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지은 죄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거룩한 삶을 위해서 일상적으로 일어나야 하는 일이죠. 그래서 우리에게 놋바다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날마다 씼어야만 합니다. 놋제단의 십자가의 은혜를 우리가 받았으나 우리가 짓는 죄에 대해서 놋바다에서 회개를 통해 정결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것이 없다고 말씀하신 그 말씀대로죠. 우리는 회개를 통해서 늘 발을 씻어야 하는 삶입니다. 

 다시 내부로 돌아가는데요. 7절에 금으로 등잔 때 열 개를 만들어 내전에 두었습니다. 왼쪽에 다섯 개, 오른쪽에 다섯 개죠 그리고 떡상도 10개를 만들어 내전에 두었는데요 이것도 마찬가지로 왼쪽에 다섯 개, 오른쪽에 다섯 개를 놓았습니다. 기억이 나시는지 모르겠지만 모세가 만든 성막과는 많이 다르죠 모세 성막에는 떡상은 왼쪽에, 등잔 때는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만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떡상에 열두 개의 떡을 올려놓았죠. 이 떡의 수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의미합니다. 레위기 24:8 “안식일마다 이 떡을 여호와 앞에 항상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그런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를 이 떡은 열두 지파가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을 봉양하기 위한 제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떡은 이스라엘을 위한 떡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떡은 하나님께 음식을 제공한다는 봉양의 의미가 아니라 반대로 이스라엘에게 그들을 먹이신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광야를 방황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농토도 없고 농사를 지을 수 없었으나 굶어 죽지 않았습니다. 200만 명이나 되는 백성들이 광야에   서 굶어 죽지 않도록 만나와 메추라기가 40년간 주어졌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먹이시는 분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공급자가 되십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아멘 

 

 그러므로 성도님들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의 공급자 되심을 믿고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를 먹이십니다. 이 떡상이 우리에게 이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시간이 있으니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등잔대가 의미하는 비유의 뜻은 무엇일까요? 빛은 어둠을 물리치는 힘입니다. 어제 목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성전에는 창이 없기 때문에 완전한 어둠입니다. 등잔때가 없다면 움직일 수조차 없었을 겁니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이 곳에 빛이 비칩니다. 악은 어둠과 같습니다. 우리를 속박합니다. 꼼짝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러나 빛은 우리에게 자유를 줍니다. 그 빛은 누구인가요? 바로 하나님이시죠.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바로 우리에게 빛을 주시는 분이고 또 자유를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아멘 

 

우리도 빛이기에 세상에 빛을 비추며 살아야 겠죠? 그러나 우리가 빛을 내기 위해서는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우리가 이 세상을 밝힐 에너지를 공급해주시는 것입니다. 기름이 떨어지면 빛을 낼 수 없습니다. 늘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함으로 성령 충만의 기름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세상의 빛을 비추어 어둠을 물리치는 힘이 될 수 있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육적인 양식도 공급해 주실 뿐만 아니라 영적인 힘도 공급해 주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누가복음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육의 양식의 공급자 하나님 영의 양식의 공급자 하나님 그것이 바로 떡상과 등잔 대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입니다. 오늘도 성령의 충만하심을 구하며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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