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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3-7-20 큐티말씀 - 여호와는 재판관이시다(대하19:4-11)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2023.07.22 16:10조회 수 1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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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대하19:4-11

제목:여호와는 재판관이시다 

 

지난 번 수요기도회 때 왕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여호사밧은 유다의 3대 선왕, 좋은 왕 중 하나라고 말씀을 드린 기억이 있습니다. 히스기아, 요시아 그리고 여호사밧이 대표적인 3대 왕인데요. 그런데 이 여호사밧의 왕의 행동이 심상치 않습니다. 지난 장에서 북 이스라엘에서 가장 악한 왕 아합과 사돈을 맺는 걸 보아하니 이게 무슨 선왕인가? 하는 생각도 들만 합니다.  

 어제 본문인 19장 1절 말씀을 보면 “유다왕 여호사밧이 평안히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그의 궁으로 들어가니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평안이라는 말이 참 어색합니다. 같이 전쟁에 갔던 아합은 전쟁에서 죽고 여호사밧만 겨우 겨우 몸만 빠져나와 살아남습니다. 이 상황이 평안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이게 평안이라고 합니다. 화요일 본문이었던 18장 16절에 미가야가 이렇게 예언을 했습니다. “그가 이르되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가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하는지라”

 참 이게 무서운 말인데요. 하나님이 생각하는 평안과 우리가 생각하는 평안이 다릅니다. 아합은 죽었고 목자는 양 같이 산에 흩어터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이 무리가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전쟁에서 이겨서 돌아온게 아닌 패전하고 돌아오는 길이 평안이라고 합니다. 그 평안이 오늘 1절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평안이라는 말입니다. 바로 미가야를 통해 주셨던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졌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 19장 1절입니다. 여호사밧이 도저히 살아올 수 없는 그런 전쟁이었는데. 어떻게 그 전쟁에 살아 돌아왔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 때문에 그는 평안하게 돌아왔습니다. 

 성도님들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평안은 사람이 만들 수 있는 평안이 아닙니다. 여호사밧 그는 지금 운이 좋아서 살아온 것이 아니고 실력이 좋고지혜가 있어서 용맹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평안이 돌아오게 하셨다” 하는 것을 지금 강조하기 위해서 역대하 기자는 평안이라고 하는 말을 지금 두 번이나 쓰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평안을 간구합니까? 그런데요 그 평화는요 내가 만드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이 하시는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는 것이 평안입니다. 그래서 역대하는 계속 말씀 중심으로 평안의 방법인 하나님께로 인도해 가고 있는 겁니다.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지는 그 자리에서 온다. 이걸 설명해 주는 것이 왕들의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2절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왕이 겨우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돌아왔는데 돌아와 보니까 예후라는 선지자가 왕을 책망 합니다. 여호사밧이 이런 얘기를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나름 전쟁터에서 지금 죽다 살아나서 겨우 겨우 돌아왔는데 왔더니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하면 망한다고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부글부글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자기가 잘못한 게 맞죠.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의 잘못이 떠오르기보다는 듣기 싫은 말에 대해서 우리는 먼저 반응하잖아요. 감정적인 반응이 먼저 앞서잖아요. 그런데 여호사밧이 왜 3대 선왕입니까?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듣고 그 순간에 깨닫습니다. 뉘우칩니다. 회개를 합니다. 여러분 이게 정말 정말 중요한 겁니다. 누가 선왕이고 악한 왕인가? 하나님 편에서는 뭘 행했느냐 안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 사람 성격이 어땠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선왕과 악한왕의 차이는 뭐냐면? 바로 하나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냐는 겁니다. 반대로 여호사밧의 아버지인 아사왕은요. 바로 오늘 이렇게 지금 이야기하는 이 예후의 아버지인 하나니가 아사한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다가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그 하나니를 때리고 그를 가둬버렸습니다.하나님 편에서 좋은 왕과 나쁜왕 좋은 성도와 나쁜 성도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말씀 앞으로 돌아오는가? 그 차이입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말씀에 돌이켜 좋은 왕의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 4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여호사밧이 예루살렘에 살더니 다시 나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지까지 민간에 두루 다니며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고” 여호사밧은 그 넓은 이스라엘의 땅을 두루두루 다니면서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그 백성을 돌아오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이 좋은 왕이 되는 겁니다. 여호사밧은 회개하는 마음으로 그때부터 왕이 자기의 해야 할 일들을 감당하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시 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여호사밧은 이미 소개한 것처럼 17장에서 어마어마한 종교 개혁을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만큼이나 했는데 내가 왕인데 하지 않고 잘못했을 때 책망을 듣고 다시금 여호사밧은 다시 그 마음을 돌이킵니다. 그리고 5절에 “또” 예전에 행했던 일을 똑같이 또 합니다. 5절입니다. “또 유다 온 나라의 견고한 성읍에 재판관을 세우되 성읍마다 있게 하고” 그리고 재판관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명령을 합니다. 6절과 7절인데요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하여 할 것인지 여호와를 위하여 할 것인지를 잘 살피라 너희가 재판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심이니라” 그리고 7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는 일도 없으시니라 하니라” 여호사밧은 17장의 종교개혁에서는 우상을 타파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종교개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재판관 시스템을 고치는 종교개혁을 실시합니다. 그런데 분명히 다시라고 했잖아요. 17장에서 했던 것은 바로 다른 왕들은 한 적이 없는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첫 번째 개혁을 통해 왕을 포함한 백성들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여호사밧왕이 행했던 일은 무엇입니까? 바로 악한 왕 아합과 즉 불신자와 사돈을 맺고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전쟁에 참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은 여호사밧은 이제야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 냅니다. 바로 자기 이름의 뜻인 여호 사페르 사파트 재판장 즉. 하나님은 재판장이라는 말씀을 생각해 냅니다. 여호사밧과 아합이 똑같이 악한 길로 들어갔는데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아난 현장을 보고 그 순간 여호사밧이 깨달은 겁니다.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 내가 어떻게 한다고 되고 어떻게 안 한다고 안 되는 게 아니구나. 하나님이 재판관이시구나. 여호와 사파트 여호 사바트 내 이름이 그대로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는 참으로 중요한 이름이구나. 이제 나는 하나님이 사파트 되시는 여호와가 사파트 되시는 여호사가 재판장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구나. 그때부터 그는 재판관을 세우고 재판관으로 하여금 올바른 재판을 하게 하는 그리하여 하나님이 재판관 되시는 이 역사가 내 인생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나라에도 국민들에게도 똑같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더니 그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유다의 3대 선왕의 이름을 올릴 수 있었고 그는 이제 우리가 내일 큐티 본문인 역대하에서 가장 사이다 장인 20장 그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대하 20장은요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장 중에 하나인데요.꼭 한번 읽어 보시길 요청드립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은혜로 재판장 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여호사밧이 자기의 삶의 본질로 돌아갔을 때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 그렇지!! 하나님이 재판장이시다. 그 재판장이신 하나님을 우리 백성이 온전히 믿고 하나님 앞에서 재판할 때 하나님의 공의가 실천될 때 하나님이 하나님 되실 때에 우리 백성은 산다라고 하는 확신을 가지고 그 나라를 사법부를 개혁을 일으켰던 여호사밧 그래서 자기가 잘못됐고 그 잘못을 지적하는 선지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그러나 힘을 얻고 용기를 내서 이렇게 다시 나가서 다시 다니며 백성들을 일깨웠던 여호사밧은 하나님이 진정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왕이 될 수 있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우리도 말씀으로 회복되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도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 가정 가운데에서, 내 아내 앞에서, 내 남편 앞에서, 내 자녀 앞에서 회복되어야 될 모습은 무엇입니까? 나를 통해 하나님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이렇게 물으며 나갈 때에 하나님이 여호와 사파트 여호사밧에게 그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일깨워주시고 회복시켜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복되는 은혜가 함께 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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