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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2-6-13 큐티말씀 - 여호와의 이름으로(왕하 2:15-25)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2022.06.17 20:07조회 수 9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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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왕하 2:15-25

제목: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늘 본문은 사실 많은 목회자들이 설교하기 꺼려하는 내용입니다. 그래도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기에 이 저주의 말씀 속에서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2장이 이렇게 시작을 했는데요. 엘리야는 요단에서 승천하였고, 엘리야가 승천하기 직전에 엘리사는 자신에게도 엘리야와 같은 능력이 주어지기를 간구합니다. 전통적으로 열왕기하 2장의 이야기는 엘리사가 엘리야의 정통성을 이어받았고, 그의 능력을 이어받았음을 설명하는 본문으로 읽혀집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에게 능력이 주어졌다고 해도 그가 아이들을 향해서 저주를 내리고, 또 아이들 42명을 곰에게 찢어 죽게 만들었다는 이 이야기는 요즘 시대의 감성으로는 조금 꺼려지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의 내용을 조금만 더 자세히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우선 작은 아이들이 엘리사를 향해서 조롱하며 외칩니다. “대머리야 올라가라, 대머리야 올라가라” 많은 분들이 이 ‘아이들’이라는 히브리어 ‘나아르’가 성인식을 거친 12세 이상의 젊은이를 뜻하기 때문에, 이 ‘아이들’은 철없는 아이들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는 청년들이었다라고 말합니다. 형사소년범이 아니다. 그러니 죽어도 싸다. 엘리사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옹호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하는 거겠죠? 그런데 이 분들은 어린이들(네아림) 뒤에 붙어 있는 ‘작은(께따님)’을 무시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원어에 나온 이 단어는 ‘젊은 청년’이라기보다는 ‘작은 아이들’이 맞습니다. ‘작은’을 의미하는 ‘까딴’은 말 그대로 작다는 뜻이고, 영어에서 ‘the old’가 ‘나이든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처럼 ‘까딴’도 ‘어린아이’를 지칭할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 또 성인식을 거쳤다고 해서 철이 들었다고 말하는 데에도 무리는 있습니다. 우리 교회 중고등부 애들만 봐도 충분히 이해가 되시죠? 이 어린 아이들이 엘리사를 향해서 외친 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대머리’이고, 다른 하나는 ‘올라가라’입니다. 새번역이나 공동번역개정 성경에서는 ‘올라가라’를 ‘꺼져라’로 번역하여서 모욕의 정도를 심화시켜 놓았습니다만, 그런데 사실은 ‘올라가라’로 번역해야 더 큰 모욕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엘리사는 자신의 스승인 엘리야가 하늘에 ‘올라감’을 보고 왔습니다. 여리고에서 이를 지켜본 선지자의 제자들도 엘리야의 시신을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들 역시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갔음’을 굳게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고 이 일을 조롱거리로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소리칩니다.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 이게 뭐가 문제일까요? 제가 오늘 본문을 설교하기 위해서 몇몇 분들의 설교도 보고, 글들도 읽어봤는데, 솔직히 그렇게 와 닿지는 않습니다. 대부분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절대로 맞는 말이 아닙니다만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대머리는 문둥병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렇기에 대머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은 사람들이었고, 죄인과 동일시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엘리사를 선지자로 세우신 일이 잘못이고 또 ‘이 아이들은 벧엘에 있었던 우상숭배자들이었다’ 그래서 죽어도 마땅하다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는 서로 모순된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만약 아이들이 엘리사의 대머리를 보고,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죄인이라고 여겼다면, 그 아이들은 우상숭배자가 아니라 오히려 율법에 충실한 아이들일겁니다. 그러니 그들을 우상숭배자들이 아닌 일반적인 아이들로 보는 것이 그것도 다큰 청년이 아닌 아직 어린 소년들이라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일이 벌어졌을까요? 힌트가 되는 단어들이 몇 개 있는데요. 우선 오늘 제목으로 사용된 24절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를 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저주를 받아 죽은 것은 누구의 뜻이라는 겁니까? 하나님의 뜻이라는 겁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다혈질이라 자기의 신체를 비하하는 아이들을 찢어 죽여버린, 성격 파탄 싸이코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뜻을 대변한 선지자 였다는 것이 성경에서 말해 주고 있는 힌트가 될 수 있습니다. 왜 아이들이 한 말이 하나님을 조롱하는 말이 됐을까요? 그리고 아이들은 어디서 이 말을 들었을 까요?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집 애기를 좀 하겠습니다. 제발 어디가서 자기들 애기하지 말라고 똘똘뭉쳐 데모했지만 새벽이라 마음놓고 하겠습니다. 억울하면 새벽기도회 나오렴~ 얼마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저랑 아내는 윤석열 어쩌고 이재명이 어쩌고 안철수가 어쩌고 이렇게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들은 우리 집 막내가 똑같이 따라하더라구요. 그래서 정신이 번쩍 들어서 아이들을 불러다가 수정해 줬습니다. 어르신들의 이름을 그렇게 불러써는 안된다. 나도 잘못했다. 앞으로 윤석열님. 이재명님 안철수님. 문재인대통령님. 이렇게 하겠다. 애들은 따라합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할려고 하는지 대충 아시겠죠? 이 아이들은 왜 하나님의 선지자를 향해서 이런 나쁜 행동을 취하게 되었을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누군가 그들을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 농사하고 있던 엘리사가 엘리야를 이어 선지자가 됐다는 소실을 듣고 “이 저주 받은 죄인아! 네 스승이 하늘로 올라갔다던데, 너도 하늘로 올라가봐라!” 이렇게 조롱했을 것입니다. 이 시대에 사람들.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던 사람들은 엘리사가 어떤 기적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적을 보여 줘봤자 그것은 호기심일 뿐입니다. 사람은 기적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볼때는 엘리야의 갑절이나 되는 능력을 소유한 선지자 엘리사 그가 앞으로 펼쳐낸 기가 막힌 하나님의 이야기가 기대되지만 그지 믿지 않는 세상사람들에게는 그저 조롱거리였을 뿐입니다. “너도 네 스승처럼 하늘로 올라가봐라” 마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앞을 지나가던 군병들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말했던 조롱과 유사하게 느껴집니다. 엘리사가 분노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엘리사가 대머리였던?지 아니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에 대한 모욕이 아니라 자신의 스승인 엘리야와 그를 하늘로 이끄시고 자신을 선지자로 세운 하나님에 대한 모욕이기에 참지 않고 저주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을 가르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어른들입니다. 당시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던 사람들이며, 그들의 부모들이며, 그들의 조부모들이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가르쳐왔습니다. 이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하나님 없이 사는 법을 교육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없어. 돈이 최고야. 학교가 중요해. 싸우면 이겨야지. 절대 용서해 주지마. 고3이 무슨 교회야? 아마도 이런 식의 교육을 받으며 살아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자신이 배운 이야기를 엘리사 앞에서 외쳤을 뿐입니다. 배운대로 행동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배운대로의 행동이 잘못된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여기지 말라는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죄로 인해 죽게 된다는 말이 모든 인류에게 해당되는 말인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본문 25절이 이렇게 끝이 납니다. 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 산으로 가고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더라. 그 당시 북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 거기서 선지자로써의 역할을 수행하는 장면으로 오늘 본문이 끝이 납니다. 아마 엘리사가 잘못했다면 하나님께 혼나는 장면으로 끝이났겠죠?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사가 옳다고 말하시고 그를 엘리야를 이은 선지자로 사용하신다는 장면입니다. 

 

 성도님들. 자녀들에게 제발 믿음의 말을 가르치길 소원합니다. 절대로 자녀들 앞에서 하나님 원망하시면 안됩니다. 우리야 다시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믿음이 약한 자녀들과 주변 사람들은 그걸 기억해 낼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절망적인 말 비관적인 말 사용하시면 안됩니다. 자녀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이러내 저러내 하지 마시고 고자질 하실 것이 있으시면 차라리 하나님께 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자녀들에게 학교 선생님이나 교회 선생님들을 부족하다고 험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앙과 공부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여러분 대신 자녀들을 가르치는 교회학교 선생님들을 위해 오히려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끊임 없이 확인하시고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죽음을 면할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할찌라도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기에 죽음을 준비하는 믿음을 준비하는 우리들 그리고 자녀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그리고 그 신앙이 그 소문이 자녀들과 주변에 널리널리 퍼지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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