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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1-1-22 큐티말씀 - 생수와 남편(요4:15-26)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2021.01.22 15:08조회 수 6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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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 4:15-26

제목: 생수와 남편 

 

 흔히 오늘 본문을 사마리아 여인, 또는 수가성 여인이라 말하지만, 사마리아는 지방 이름이고, 수가성은 도시 이름이라 생각하시면 쉬울 듯 합니다. 오늘 말씀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15절인데요.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이 수가성 여인은 평생을 목마름으로 살아왔습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본인은 괴로웠고, 힘들었고, 무언가에 꽉 막힌 자신의 인생에 삶의 갈증을 느끼며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녀는 서러움과 목마름을 달래기 위해서, 매일 4킬로를 그것도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뜨거운 대낮에 걸어서 물을 길으러 다닐 수 밖에 없었던 인생이었습니다. 그 여인을 찾아오신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삶의 주인에 대한 그리고 예배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게 되길 소원합니다. 

 

첫째. 가서 네 남편을 데려오라 하신 예수님 

그 예수님께서 16절에서 느닷없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남편을 데려오라.” 앞 본문의 주제였던 “생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남편” 이야기로 주제가 갑자기 바뀌게 됩니다. 그러자 그녀는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네 말이 맞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참 되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  제가 표현력이 부족해서 설명을 잘 못하겠지만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기가막힌 언어유희가 숨어 있습니다. 생수 남편 예배가 오늘 본문에서 사용된 단어들입니다. 먼저 여러분에게 남편이란 무엇입니까? 오늘과는 많이 다르게, 그 당시 남편은 그 가정의 주인이었습니다. 마치, 삶을 지탱하는, 따라서 남편이 없으면 살아 갈 수가 없는 그런 사회적 종교적인 의미가 남편이라는 용어 속에 담겨져 있었습니다. 여인들에게 남편이란 삶을 지탱하여 주는 버팀목과도 같은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수가성 여인에게 다섯 명의 남편이 있었다는 것은 그녀는 아직 자기 인생의 참 주인, 인생의 참 버팀목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한없이 기대고 싶은, 그래서 끊임없이 용서와 위로와 사랑으로 보듬어 줄 수 있는 그런 참된 삶의 주인을 애타게 찾기 위해 목말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생수를 찾고 남편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까지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하여, 항상 “여기”라는 우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해결이 되지 않았겠죠? 그래서 목마름이 영원히 해결되기 위하여는 “예수”라는 “여기로” 나와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라는 “여기에” 해답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인생에 영원한 버팀목이 되는 참 주인을 평생 찾아 헤메였던 수가성 여인의 영적 목마름은 각박한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녀는 그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서 “여기”라는 야곱의 우물을 다녀 갔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이제 “예수”라는 여기, 이 곳에서 인생의 참 주인을 예수를 만났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생수로 삶의 갈증이 해소되는 축복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녀는 이제 “예수라는 여기로” 매일 나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여기 우물 에서 여기 예수로 우리의 관점이 바뀌길 소원합니다. 

 

둘째, 예배, 장소의 문제가 아닌 대상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나지 않습니다. 수가성 여인은 여기서 갑자기 뜬금없이 ‘예배’라고 하는 이야기를 꺼냅니다. 수가성 여인은 예수님과 대화를 하면서, 이분이 선지자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수가성 여인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당신은 선지자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디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우물에서 “생수”를 찾던 여인이 “남편”을 여기로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오라는 예수님 말씀에 대하여, 갑자기 이 여인은 왜 “예배”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것일까요? 생수. 그녀가 목이 마르도록 찾고 찾았던 인생의 참 주인이란, 남편이 아닌 아닌 참 예배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궁금해 했던 예배 장소에 대해 물어봅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마리아 여인이 말하는 “이 산”이란 야곱의 우물에서 남서쪽으로 보이는 그리심산을 말합니다.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을 예배 장소로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휠씬 이전부터 그리심산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왔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으로 갔습니다. 창세기 12장입니다. 그가 세겜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 세겜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수가성입니다. 세겜, 즉 ‘수가’라는 장소야말로 이스라엘 백성의 선조가 하나님의 이름을 처음으로 불렸던 장소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그리심산과 에발산은 하나님 예배를 드리는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그 후, 분열왕국 시대가 되면서 여로보함이 벧엘과 단에 어린 송아지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그 후 기원전 4세기 경에 그리심산에 성전이 세워지지만, 128년경에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그런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기에 예수님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배를 못 드리고 있었지만 언젠가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릴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수가성 여인은 예수님? 언제쯤 저 산에서 예배 드릴수 있을까요? 라고 예수님께 여쭤 본 것입니다. 그 때, 예수께서 21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예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예배는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장소가 아니라, 23절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예수님은 예배를 공간적으로 장소적으로 이해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배에 대하여 완전히 새로운 정의를 내렸습니다. 24절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그것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더 이상 예배는 장소와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드리느냐?가 문제였습니다. 대상이 누구냐?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드리는 지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예배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였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여기서 영적 예배 할 때 영적이라는 단어가 reasonable 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reasonable이란 합리적인 이유 있는 뜻으로 북한처럼 사이비 이단처럼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예배가 아닌 이유를 가지고 구원을 주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시기에 예배할 이유를 가지고 예배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삶을 실제적으로 지탱하여주는 버팀목은 무엇입니까? 남편입니까? 자녀입니까? 아님 재산이나 명예나 미모? 그건 아닐테고 암튼 우리가 가지고 있는 환경입니까? 우리는 우물이라는 “여기로” 와서 목마름을 해소하려고합니다. 그러나 “예수”라는 “여기로” 나오셔서, 그분 앞에 자신을 세워, 그분이 주시는 영생의 생수를 마시길 바랍니다. 그것이야말로, 당신 인생의 영원한 참된 버팀목입니다. “여기로”란 예수 앞으로라는 뜻입니다. 그 예수님을 진정으로 예배함으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그 은혜를 구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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