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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주님의 살과 피(08년 3월 셋째주 설교)

두목사2008.03.22 17:12조회 수 1980추천 수 16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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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한복음 5장 47-58절
말씀제목 : 주님의 살과 피

오늘은 고난주간을 시작하면서 성만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성찬식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후대의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이미 행하셨고 또 말씀하시기를 후대에 이렇게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우리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찬식에 대해서는 학설이 3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로마 카톨릭에서 믿고 있는 초기 기독교회가 믿었던 화채설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성찬식에 사용되고 있는 빵과 포도주가 주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받아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다”고 말씀하시고 또 포도주도 “모두 돌려가며 이잔을 마셔라. 이것은 죄를 사하여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린 나의”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을 근거로 해서 성찬식에서 기도하고 눈을 뜨면 떡과 포도주가 진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기념설이라고 합니다.  시간이 많이 흐르는 동안 로마 카톨릭이 부패하는 것을 보면서 중세시대 종교 개혁이 일어나게 되는데, 당시 주도했던 쯔빙글리라는 사람이 성찬식에 대한 화채설을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어떻게 기도 한번 했다고 해서 빵이 주님의 살로 변하고 포도주가 피로 변하느냐, 그것은 미신이다. 이것은 상징적인 것이다.  빵은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것이고 포도주는 주님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영적 임재설을 주장하는데, 또 다른 종교 개혁가 존 칼빈이 주장한 것입니다.  빵과 포도주가 단순히 기념만 하는 것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이 영적으로 반드시 임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성찬을 행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반드시 역사하셔서, 마귀가 물러가기도 하고, 질병이 낫기도 하며, 신비한 성령의 은사를 받기도 하고, 우리가 추측할 수 없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는 성찬식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리 장로교는 존 칼빈의 영적 임재설을 주로 따르고 있는데, 어떤 학설을 따르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찬식을 대하면서 우리의 마음에 주님의 살과 피의 의미를 얼마나 마음에 되새기고 생각하면서 대하는지의 태도에 따라서, 그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기도 하고 안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오늘 주님의 살과 피의 의미를 가슴에 깊이 새기고 대한다면, 우리 가운데 있는 우리를 얽어 매고 있고 사로잡고 있는 어둠의 힘들이 여러분으로부터 분리되어져 떠나가게 될 것이고, 필요하다면 우리의 정서적인 부분 및 연약한 부분들이 치료되어지고 회복되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죽었던 신앙이 살아나고 잠자던 신앙이 깨어나며 우리 삶 가운데 오랫동안 기도했던 것들이 이뤄지는 놀라운 성찬식이 될 것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 대하게 될 주님의 살과 피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3가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주님의 살과 피를 대한다 즉, 그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것에는 주님께서 나의 죄 때문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인다는 것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함께 요한복음 5장 53절 5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또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는 생명이 없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릴 것이다.』 잘 보시면, 누구에게는 생명이 있습니까?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사람은 생명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는 생명이 없습니까? 살을 먹지 않고 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 생명이 없습니다.
이 성경은 요한이 썼는데, 요한이 쓴 다른 성경 요한1서 5장 11절 12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그 증언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것과, 바로 이 생명은 그 아들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생명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고 있지 않은 사람은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요한이 똑같이 요한복음과 요한1서를 썼는데, 생명이 있고 없음에 대해 주장하는 표현이 틀립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에게 생명이 있다고 하는데, 요한1서에는 예수님을 모시는 자에게 생명이 있고 모시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토대로 유추해보면,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이 곧 예수님을 모시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실 때 우리는 어떤 고백을 하게 되죠?  “이 찢긴 살은 나 때문에, 나의 죄로 인한 것이며,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해서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리셨습니다”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과 더불어 우리는 살을 먹고 피를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하면 바로 이런 고백이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나는 죄인인데 내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찢기셨어요, 나 때문에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어요.”라고 나의 죄인됨을 고백하는 것과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요 그에게는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고백이 없는자들은 예수님을 모시지 않은 사람이요, 그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대하면서 우리 마음속을 점검해야 합니다.  나는 진정 예수님의 죽으심과 관계가 있는가, 나는 진정 죄인이라고 생각하는가, 나의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찢기시고 피흘리셨다는 사실을 진정 믿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어야만 우리에게는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살과 피를 대하면서 내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찢기시고 피흘리셨다는 고백이 있는 성찬식이 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는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것에는 “주님만이 나를 살게 하는 힘입니다”는 고백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요한복음 5장 55절 읽어보겠습니다. 『내 살은 참 양식이요, 내 피는 참 음료이다.』 57절 끝에 보면 『나를 먹는 사람은 나 때문에 살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살이 참 양식이고 예수님의 피가 참 음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중에 양식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일주일에 한 끼만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람은 하루에 세 끼를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다 두 끼만 먹으면 왠지 허전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무슨 뜻이냐면, 너와 내가 항상 동행해야 한다. 항상 교제해야만 살아갈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을 양식으로 표현한 것은, 우리는 주님과 항상 만나야만이 살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포도나무요 나는 가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서 영양분을 공급받아야만 살수 있고, 열매를 맺을수 있는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날마다 밥먹듯이 주님을 만나고, 물 마시듯 주님을 만나야 만이 우리는 힘을 얻고 살아갈 수 있다는…그 고백이, 바로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의미 속에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성찬식을 하면서, “주님, 내가 이 빵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과 같이 주님 안에 항상 거하며 주님을 항상 만나며 주님으로부터 항상 힘을 공급받겠습니다”고 고백하는 성찬식이 되기 바랍니다.

세 번째는,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의미 속에는, 내가 받은 이 구원의 은혜 이 영원한 생명을 다른 사람들도 누리게 하기 위해 우리 역시 자신의 살을 찢기고 피를 흘리겠다는 각오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6절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입니다.』 요한1서 3장 1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 두 말씀을 연결해보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찬식에 살을 먹고 피를 마실 때마다 너희가 할 것이 있다. 너희를 구원한 그 은혜를 너희만 소유하고 있지 말아라. 그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선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은혜를 선포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주님의 복음을 전하다 보면 우리가 치러야 할 값이 있습니다. 전도를 하다 보면 우리가 치러야 할 희생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썩어지심으로 말미암아 많은 영혼들이 구원함을 받은 것과 같이, 우리 역시 형제자매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치르는 삶을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냐하면 우리 자신이 형제자매를 위하여 예수님처럼 우리 목숨을 버리는 데까지 가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의 살이 찢기는 고통과 피를 흘리는 아픔이 동반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실 때마다 우리는 이러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내가 이 은혜를 받았사오니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었사오니, 나도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하여 내 몸이 찢기고 내 피를 흘리는 이 고통과 모욕과 아픔과 희생을 우리가 견뎌내고 치러내겠습니다”는 결단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1974년도에 “생존(Alive)”이라는 책이 발간되어 전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같은 제목의 영화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이 문제의 책은 실화라고 합니다.
1972년 10월 13일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를 떠나 칠레의 산티아고를 향하던 비행기가 악천후로 인해서 안데스 산맥에 추락하게 됩니다. 당시 비행기에는 럭비선수 15명, 응원단 15명, 승무원 15명을 포함해서 45명이 타고 있었다고 합니다. 눈 덮인 안데스 산맥은 산악인 조차도 두려워하는 대단한 산맥인데요, 사고가 나자마자 구조대가 출동했지만 열흘 동안 아무런 흔적을 찾지 못해서 결국 아무도 생존하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철수하게 됩니다.
그러나 67일이 지난 후에 사고현장이 발견되었는데요, 놀랍게도 그곳에는 16명이 생존해 있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들이 혹한의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2개월 이상이나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을 조사한 결과, 그곳은 눈덮인 산속이었기 때문에 먼저 죽은 시체가 부패하지 않았고 그들은 죽은 시체를 뜯어 먹으며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먼저 죽어서 세상을 떠난 니코리치라는 청년이 아버지에게 글을 남기게 되었는데요,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도 전혀 믿기 어려운 일이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죽은 친구의 살을 먹는 일입니다. 저도 이제 얼마 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죽은 후에 제 살이 친구들에게 더 오래 생명을 제공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자기 살을 남에게 줌으로써 생명을 제공하였고, 또 그들은 남의 살을 뜯어먹음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생존한 16명 가운데서 호세라는 청년은 이렇게 고백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학창 시절 교회에 한 주일도 빠져 본 적이 없습니다. 부모님이나 동네 어른들은 모두 저를 칭찬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교회에는 다녔지만 하나님의 집에 거하지 않았고, 신자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었지만 참된 신앙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눈 덮인 산 속에서 죽음과 싸우면서 비로소 하나님의 집에 거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수없이 성만찬예식에 참석했으나 그저 기계적으로 빵과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을 뿐, 그 의미가 내 가슴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산 속에서 죽은 친구의 살 조각을 손에 들었을 때에 그것이 예수님의 몸인 것을 알았고, 생명이 무엇이고 십자가의 구원이 무엇인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그 동안 어떻게 기계적으로 성찬예식에 참석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 세례를 받지 않아서 성찬예식에 직접적으로 참석하지 못하여서 그 부분에 느낌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실 때에 우리 주님께서 친히 내 삶 가운데 찾아와 주실 때 “주님 나는 정말 죄인입니다. 나를 위해 찢기시고 피 흘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십니다.”라는 고백을 하며 “주님, 이제 내가 날마다 주님이 나의 양식인 줄 알고 매일 주님과 교제하면서 모시면서 살겠습니다. 또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찢기시고 피 흘리셨듯이 나도 주님을 증거하기 위하여 내 주위에 있는 사람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면서 때로는 찢기고 상하고 피 흘리고 아프고 눈물 흘리고 고통스럽더라도 이 일을 하겠습니다”는 결단이 일어나신다면, 오늘의 성찬식중에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를 경험하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그 역사가 여러분 삶 가운에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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