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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웃게하시는 하나님(07년 12월 셋째주 설교)

두목사2008.03.01 15:21조회 수 1468추천 수 16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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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창세기 21장 1-7절
말씀제목 : 웃게하시는 하나님

기독교가 믿는 경전을 우리는 성경이라고 부릅니다. 이 성경은 신약과 구약으로 나뉩니다.  구약은 오래된 약속이고, 신약은 새로운 약속이라는 뜻입니다.  오래된 약속은 구약의 시대에 주님께서 메시야 즉 구원자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자를 기다렸습니다.  이것이 구약입니다.  신약의 시대에 와서는 예수님께서 그 구원자로 약속대로 오셨고, 또 이 땅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드리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그리고 재림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주신다는 그 약속을 우리는 신약으로 부릅니다.  성경의 주제는 이 약속과 구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약속해주시고, 그 구원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약속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것을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고 서로 어기지 않기로 다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약속의 책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구원을 주심에 있어서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나의 자녀로 삼아주겠다”,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고 천국에 들어가는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약속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붙드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약속을 붙들고 또 이 약속이 내 삶 속에서 이뤄질 것을 확신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신실하지 않으시다면, 즉 약속을 해놓고도 이행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없고 신앙생활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이루신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우리는 기도합니다. 왜요?  “너희가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찾으면 찾을 것이고, 문을 두드리면 내가 열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신다면 이 땅에 기도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기도의 응답에 대한 약속을 우리에게 주시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신실하게 약속의 내용대로 이행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 거기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선택하고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약속, 언약을 맺었고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하나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고,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고, 또한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임을 아브라함이 알게 되고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을 가지고 아브라함이 살게 된 것입니다..  그 믿음이란 무엇인지 설명하는 그 모델로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우리에게 불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은 크게 3가지로 나뉠 수 있습니다.  그 첫째가 그에게 자녀를 주시고 그 자녀로 이 땅에 큰 민족을 이루신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 후손들이 살아갈 땅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고 복의 근원으로 삼아서 모든 민족이 그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서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약속을 하나님께서는 이 성경을 통해서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신실하게 이행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구원의 약속입니다.  구원의 약속은 우리가 처음 들을 때 쉽게 납득되고 믿어지고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불신.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이 비논리적으로 생각되고,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입니다.  과연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이것에 동의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을 보면서 씨익 웃게 됩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실제로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이 믿어질 때에 우리는 감격하는 것입니다.  나같은 자가 어떻게 구원이라는 것을, 하늘 나라라는 놀라운 선물을 받을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눈물 흘리고 기뻐하고 감격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사라가 그 아들 이삭을 안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격하는 장면입니다. 그야말로 기쁨과 감사와 밝음이 있으면 좋겠다고 소원하는 사라, 그 사라를 흐뭇하게 쳐다보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 이삭은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그 웃음은 어떤 뜻입니까?  기쁨과 감격의 웃음,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그 약속을 내 삶 속에 이뤄주셨음을 기뻐하는 믿음의 웃음입니다. 이것을 이삭을 통해서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절에도 아브라함이 웃은 적이 있습니다.  창세기 17창 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꿔주십니다. 여러 민족의 아버지(열국의 아비)라는 뜻을 가진 아브라함으로 바꿔주셨습니다.  15절을 보면 사라의 이름도 “사래”에서 “사라”로 바꿔주십니다.  사라의 뜻은 여러 민족의 어머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바꿔주시면서, 그들에게 아들을 주고 그 아들의 후손을 통해 여러 민족으로 번창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듣고 아브라함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웃으면서 혼잣말을 하였습니다. “나이 백살의 남자가 아들을 낫는다구요? 또 아흔살이나 되는 사라가 아이를 나을 수 있을까?”라고…(17절) 이 웃음 속에는 기쁨이 아닌 비웃음, 설마 말도 안돼, 불신, 포기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도저히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8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아뢰었다. 이스마엘이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으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제가 안들은 걸로, 농담한 것으로 여길 테니까 이스마엘이나 복을 많이 주셔서 잘 살게 해주시면 만족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19절을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아니다. 너의 아내 사라가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다. 아이를 낳거든,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여라. 내가 그와 언약을 세울 것이니, 그 언약은, 그의 뒤에 오는 자손에게도,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농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짜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아들을 낳겠다고 하시며, 이삭으로 이름까지 지어주십니다.  

가만히 보면 웃음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픽 웃는 그런 웃음, 또 하나의 웃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고 기뻐하고 감격하는 그 웃음이 이삭이라는 이름에 담겨있습니다.  아브라함만 그렇게 웃은 것이 아니고 사라도 똑같이 웃었습니다.  18장 10절을 보면 “그 때에 주께서 말씀하셨다. "다음 해 이맘때에, 내가 반드시 너를 다시 찾아오겠다. 그 때에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사라는, 아브라함이 등지고 서 있는 장막 어귀에서 이 말을 들었다 “  내년 요맘때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랬더니 “사라는 나는 기력이 다 쇠진하였고, 나의 남편도 늙었는데, 어찌 나에게 그런 즐거운 일이 있으랴!" 하고, 속으로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사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못 믿겠다는, 농담이라고 생각하며 웃었다는 것입니다.  사라가 왜 이렇게 웃었을까요?  하나님께서 하늘의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자손을 주겠다는 약속을 주셨는데, 한해 한해 시간이 갈수록 아들은 안 생기고 육신은 늙어가고, 어느새 24년의 시간이 흘렀고, 이 육신의 상태로는 아들을 나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속해서 아들 이야기를 하시니까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불신의 대상으로 느껴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 들어서서 하나님의 약속이 실제로 이뤄졌습니다.  사라가 아이를 안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은 너무 기쁘고, 상상 속에서나 있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사라에게는 21장 6절 “사라가 혼자서 말하였다. 하나님이 나에게 웃음을 주셨구나. 나와 같은 늙은이가 아들을 낳았다고 하면 듣는 사람마다 나처럼 웃지 않을 수 없겠지.”  웃음을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농담으로 여겨지는 불신의 웃음이 아니라, 하나님은 약속한 것을 분명히 이루시고 전능하신 능력으로 그 약속을 이행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야말로 기뻐서 감동의 웃음을 짓게 는 웃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라의 웃음을 바꿔 주셨습니다.  웃음이 바뀌었을 때에 믿음도 바뀌었습니다.  하나님도 할 수 없을 줄로 알았던 것을 하나님이 하신 것을 경험하고,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말씀하신 것을 꼭 이루신다는 것을 믿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그 믿음을 주시고, 아브라함을 이렇게 믿음의 조상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계속 반복해서 행하십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서도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행하고 계십니다.  

여리고 성을 점령하는 장면을 모면,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을 돌고 마지막 날에 소리를 지르라고 명하십니다. 누가 봐도 어리석은 행동이지만, 말씀대로 행하고 소리를 질렀을 때에 여리고 성이 무너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궁시렁 궁시렁 대며 이게 무슨 짓이냐며 비웃으며 성을 돌았을 것이고, 그래서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절대 입을 열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비웃음을 감격과 기쁨의 웃음, 믿음의 웃음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늘 이런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기드온의 300 용사의 경우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미디안족이 10만명의 용사를 데리고 쳐들어왔을 때에, 이스라엘은 징집명령을 내리고 3만2천명이 모였습니다. 이 숫자로도 이미 열세인데,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사람을 돌려보내시니 1만명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직도 많다고 하시며, 냇가에서 물을 먹으라 명하시고 그것을 보고 300명의 용사를 뽑으셨습니다.  그것이 전쟁과 관계가 있을까요? 용사를 뽑으려면 달리기를 하던지, 화살쏘기나 씨름을 하던지 아니면 성경퀴즈를 하던지 해서 뽑아야 납득할 만한데, 그리고 창과 화살이 아니라 나팔, 항아리, 횃불을 가지고 전쟁터에 나아가서 한밤 중에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들고 외치라고 기드온에게 명하셨는데, 이때 기드온과 백성들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때에 미디안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죽이다가 패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코메디와 같은 일을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쟁은 하나님이 승리하신다는 것, 하나님은 전능하다는 것을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겼다”는 말이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게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방법을 쓰셨습니다.  나사로라는 예수님의 제자가 병이 들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누이가 예수님께 와서 빨리 고쳐달라고 애원했으나 예수님은 가지 않으시고 밍기적 밍기적 거리시다가 결국 나사로는 죽게 되고, 장사를 치르고, 삼일이 지나고, 나사로는 썩어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뒤늦게 오셔서 황당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네 오라비가 살아날 것을 믿느냐?”고 마르다에게 묻습니다.  이때 마르다는 마지막 날에 모두가 부활할 때에 나사로도 부활할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살아나지는 못할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행하신다는 것을 마르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에게도 말씀하신 것, 약속하신 것을 꼭 이행한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약속하신 것을 지키지 않는 것이 있을까요?  지연되는 일은 있겠지만 이행하지 않으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25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우리는 덜 걸릴 수도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슨 약속을 하셨습니까?  또 우리 교회에는 어떤 약속을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어떻게 이뤄가시겠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시편 126편을 찾아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올 때에 그 심정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70년 후에 다시 예루살렘 시온으로 돌아오도록 회복시켜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포로생활을 보면 “몇 년 안 남았네” 생각하며 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망이 점점 사라지고, 언어를 잊어가는 자식들을 보면서 결국 여기 정착하게 되는구나 생각하며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포로 생활 70년 후에 예수살렘으로 돌아가게 될 때에 그들은 꿈을 꾸는 것처럼 기쁨이 흘러 넘쳤고, 입에는 웃음과 찬양으로 가득찼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신 그 큰 일 앞에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믿고 기뻐하는 삶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들도 꼭 이뤄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죄를 용서해주셨다고 하시지만 그 증거를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 속으로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할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이런 믿음을 갖게 됩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신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을 봐도 그렇고, 다른 사람의 삶을 봐도 그렇고, 내 삶을 봐도 그랬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18-20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고, 믿을 만하다는 것이고, 바울이 고린도에 전한 복음은 “예”도 되고 “아니오”도 되는 것이 아니라 “예”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멘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그 약속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셨고, 그래서 우리는 이 약속을 바라보면서 미래를 바라보면서 즐거워하게 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 우리를 부르시고 면류관을 주시고 영원한 하늘나라의 기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해 왔고, 그 약속이 이뤄질 것이라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래의 웃음을 앞당겨서 지금 웃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지금의 고통과 어려움으로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훗날의 기쁨을 미리 즐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시면서 주신 약속이 있습니다.  이 교회에 주신 약속이 있습니다.  그 약속 앞에서 감사하며 믿음으로 승리하시며, 감격의 기쁨의 웃음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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