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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2-8-3 큐티말씀 - 구원의 창시자(히 2:10-3:6)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2022.08.08 14:59조회 수 1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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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히 2:10-3:6 

제목: 구원의 창시자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구원의 창시자라고 소개합니다. 10절인데요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여기 구원의 창시자라는 의미는 헬라어로 아르케고스 개척자 길을 닦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신 그 길이 바로 이 단어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 할 이유는 그분이 구원의 창시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들에게 아무리 나를 따르라. 나에게로 와라 해도 인간은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능력과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구원의 창시자 구원의 인도자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낮아지시고, 죄가 없으심에도 고난당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죽임 당하시는 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아멘 

우리는 예수를 믿고 성경을 읽으면서 이 사실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이해되고 받아드려지고 있지만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절대로 이해할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과 인간은 도저히 함께 할수 없는 ‘거룩’과 ‘죄인’이라는 넘을 수 없는 엄청난 간격이 있는 존재라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이해할수 없었고 게다가 그 예수님이 십자가라고 하는 도저히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 할수 없는 나무에 달려 죽은 저주받은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감히 참지 못하고 신성모독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바로 유대인들이 복음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그들은 거부감을 가지고 거치게 되고 부딪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위기이지 현대 사회를 살아 가고 있는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이 연약한 인간, 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으로 인도하는 길을 제시하시되, 구약의 율법 같은 높은 수준의 도덕율이나 완전함을 요구하셨다면 우리는 과연 구원의 길을 갈 수 있었을까요? 아뇨 그럴수 없었을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과 교제하기 위하여 자기의 형상으로 인간을 만드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 복음을 위해 사람들 간의 가르침에서 눈높이를 맞추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인도자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좋은 인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우리의 구원의 개척자요 인도자이신데, 그분이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도덕적인 것을 요구하신다면, 우리는 결코 그 구원의 길을 갈 수 없겠지요. 그래서 구원의 완전한 인도자되신 주님은 우리에게 높아지기를 요구하시는 대신, 스스로 낮아지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다시오 구원의 완전한 인도자되신 주님은 우리에게 높아지기를 요구하시는 대신, 스스로 낮아지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10절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창시자를 낮추시고 고난당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영광에 이끌어 들이시는 구원의 방법을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놀랍죠? 이게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많고 많은 신들은 물론 다 가까지만. 인간에게 이렇게 높은 수준이 되라고 합니다. 부처가 되고 착한 사람이 되고 고행을 하고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되라고 그러면 구원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가요? 불가능한 헛된 속임수 철학과 우상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수준으로 하나님이 낮은 모습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이게 복음입니다. 할렐루야~ 11절입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주님께서 낮아짐을 통해 이루신 구원사역을 통해 거룩하게 하시는 분 곧 예수님과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 곧 죄인이었다가 거룩함과 영광을 얻게 되는 우리를 모두 하나님의 형제 자매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렵죠?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38년된 혈루병 걸린 여인이 예수님을 만졌을 때 일반적인 율법은 혈루병 걸린 여인이 만진 모든 것은 다 부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혈루증과 접촉한 사람은 하루동안 부정하고 옷을 빨고 몸을 씻어 정결하게 하는 규례를 해야지만 부정이 사라지는게 율법의 요구였습니다. 그런데 혈루병 걸린 여인이 예수님을 만졌을 때 예수님이 부정해 진게 아니라 그 여인이 혈루의 근원이 말랐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바로 그분이 하나님과 근본이신 하나님과 본체이신 하나님 자신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게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하신 말의 의미입니다. 원래 인간은 죽음을 만나면 죽어야 하는데 아니 이미 죽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자 죽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겨 버리셨습니다. 원래 죄는 너무나 강력해서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사망으로 이끌어 가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이신지라 그 죄의 권세를 소멸해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창시자이신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죽임당하심으로 이루신 일들이 우리를 하나님께 받아들임이 되게 하셨습니다. 먼저, 15절에서 주님의 낮아지심으로 우리는 죽음의 공포에서 종노릇하다가 해방되었습니다. 또한 17절에서 대제사장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통해 그분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시고, 의로우신 주님과 죄인된 우리를 자리바꿈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18절에서 예수님은 낮아지심을 통해 친히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 받는 사람들을 도우실 수 있는 분이 되셨습니다. 아멘 

성도님들 우리는 예수님을 구원의 창시자로 믿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종교. 종교라고 하면 좀 어패가 있지만 그래도 그 종교의 이름이 바로 그리스도의 한자음 기독교입니다. 성도님들 이 주님이 우리의 구원의 창시자되신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한 높은 수준의 도덕과 윤리적인 삶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 땅에서 낮아지셨고, 그 낮아지심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여시고 그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구원의 창시자되신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되심을 기뻐하며 살아갑시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십자가 단단히 붙잡고 나아가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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