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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0-6-10 큐티말씀 -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참 신앙(왕하 17:24-41)

사무간사22020.06.21 15:13조회 수 9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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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왕하 17:24-41

제목: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참 신앙

 

사마리아로 이주해 온 이방민족들은 자기의 우상도 섬기고 하나님도 섬기는 혼합주의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땅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만 경외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도 섬기고 세상도 섬기는 혼합주의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참된 신앙은 무엇인가? 

 

첫째, 참 신앙은 재앙을 면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아는 것이다.

북이스라엘을 정복한 앗수르 왕은 북이스라엘백성들을 끌고 가서 앗수르의 사방으로 흩어버리고, 그 비어있는 북이스라엘의 사마리아 땅에 앗수르에 살던 이방민족을 이주하여 살게 하였다. 그런데 이방민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와 살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사자들을 보내 몇 사람을 죽이셨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법에 의해 다스려지는 땅>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앗수르왕이 북이스라엘 출신의 제사장을 보내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우게 하였지만, 그 목적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신의 법을 배워서 <재앙을 면하게 하기 위함>(26-27절)이었다. 제사장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이방민족은 하나님도 섬기고, 동시에 각자 자기 우상신도 섬겼다. 왜 그랬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첫번째 이유는 <북이스라엘 출신의 제사장>이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그 제사장은 아론계열의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아니었다. 과거 북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온갖 우상을 함께 섬기며 산당에서도 제사를 드렸던 엉망진창의 제사장들이었다. 그런 제사장이 여호와를 경외하기를 바르게 가르쳤을까? 제사장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도 섬기고 다른 신도 섬기게 가르친 것이다. 북이스라엘 출신의 제사장이나 이방민족이나 모두 왜 우상도 섬기고 하나님도 섬겼을까? 단지 그들은 <재앙을 면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섬긴 것이다. 그러나 가나안 땅이 어떤 땅인가? 애굽의 종되었던 자들을 구원하여 하나님만 섬기도록 이끌어주신 약속의 땅이었다. 즉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를 상징하는 땅이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이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 찬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겼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은혜>보다는 <생존과 풍요>를 원했다. 그러나 그로 인해 그들은 약속의 땅에서 쫓겨났다. 하나님의 땅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다. 누구든 이 법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용납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방민족이라도 가나안땅에 들어왔으면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원하셨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천국)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를 아는 사람들의 땅이기 때문이다. 교회를 다니고 예배를 수없이 드려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저 재앙을 피하기 위해, 자기 생존을 위해 예수 믿는 신앙에 머무를 수밖에 없고, 하나님이 자기 생존에 도움이 되지 못하거나, 또는 고난이 오면 과감하게 하나님 아닌 다른 신을 찾게 되는 것이다. 참 신앙은 재앙을 면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아는 것이다.

 

둘째, 참 신앙은 소유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가는 것이다.

35-39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인데, 내용은 <하나님만 경외함으로, 우상숭배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행하면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그런데 이 약속의 말씀에 대해서 이스라엘도 따르지 아니하였고, 사마리아에 들어와 살게 된 이방민족도 따르지 않았다. 왜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섬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기들이 원하는 풍요와 번영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처럼 <세상에서의 번영>을 원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는 은혜로 간주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열매와 성취, 번영만을 하나님의 복으로 여겼다. 그래서 자기들보다 더 풍요롭고 배부름을 누리는 이방인들의 풍속을 따르게 된 것이다. 그들의 신을 섬기면 자기들도 배부름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말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신 것이다. 성경이 계시하시는 하나님은 <생존이 아닌, 생명을 위해 일하시는 분>이다. 물론 생존의 문제가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하나님은 생존보다 생명의 문제를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뜻이다. 주님은 우리의 육신을 배부르게 하기 위해서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기 위해서 모든 일을 하시는 분이다. 그런데 세상은 <생명을 약속하는 하나님의 언약>에는 관심이 없다. 세상은 생명보다 풍요와 번영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인기있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집 값을 오르게 해주고, 자식을 공부 잘하게 해주는 하나님이다. 즉, 내 영혼의 잘됨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은 관심사가 아니다. 그러나 신앙의 본질은 생명이다. 이땅에서 반짝 풍요롭게 살다가 지옥에 떨어져 영벌을 받으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그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육신의 배고픔 때문에 소유가 늘어나는 기적을 원하지만, 실상은 멸망당할 죄인이 구원받아 영원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것이 기적 중의 기적이다. 하나님은 38-39절에 내가 너희와 세운 언약을 잊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이전 풍속대로만 행했다. 즉 이땅에서 자기의 배를 부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도 섬기고 동시에 세상도 섬기며 살았다.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을 심판하심으로 그런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님을 보여주셨다. 참 신앙은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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