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습3:1-8
제목:무너지지 않으려면
▶첫째, 말씀생활과 기도생활을 잘해야 무너지지 않는다.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2절) 본문에서는 예루살렘백성들이 왜 “패역하고 더럽고 포악한 성읍”(1절)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말씀과 기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문제는 말씀과 기도의 문제였다. ①“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2절)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자들이 그렇게 패역하고 더럽고 포악한 일을 행함에도 주님은 그들을 떠나시지 않고 그들 가운데 계시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공의 즉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는데도, 말씀의 빛, 진리의 빛, 의로운 빛을 비춰주시는데도, 말씀의 빛 앞에서 자신의 죄악이 드러남에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5절) 왜인가?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말씀을 듣고 있다고 듣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서 말씀을 거부하면 귀로 들어도 듣는 것이 아니다. 말씀은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②“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2절) <기도의 삶을 살지 않는 것>을 말한다. <기도>라는 행위는 단순히 무엇인가를 구한다는 것 이전에, <하나님과의 교제>라는 것 이전에,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표시이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이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뜻이고, <하나님을 찾지 않겠다>는 뜻이다. 연약해서 기도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의지하지 말아야할 대상을 부지런히 숭배하는 더러운 행위를 하는 이유(7절)는 기도의 삶을 중지할 때 나타난다.
▶둘째, 하나님의 마음을 바르게 알아야 무너지지 않는다.
5절에 “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라는 말씀을 보라.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고 외면하고 각자 자기들의 욕심을 따라 삶의 자리에서 죄를 짓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지 않으시고, 그들 가운데 머물러 계시면서, 아침마다 빠짐없이 돌아오라고 바른 길을 제시하시는 것이다. 아침마다 빠짐없이 공의를 비추는 주님의 마음이 느껴지는가? 6절과 8절에 나오는 심판의 경고는 실상은 “돌아와, 돌아와.”라는 뜻이다. 주님은 강하게 심판을 말씀하시지만, <회복의 기회>를 말씀하시고 계신다.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8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징계하고 심판하시는 이유는 <질투>때문이다. 사랑이 없으면 질투도 없다. 사랑하기 때문에 질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렇게 징계하고 책망하시지만, 하나님의 본심은 ‘제발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것이다. 성경에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고 징계를 선포한 선지자들 치고 마지막 부분에 하나님의 회복 이야기를 하지 않은 선지자가 있는가? 하나도 없다. 심판과 회복, 어느 것이 하나님의 본심인가? <회복>이 하나님의 본심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무섭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란 생각이 드시면, 그 수준은 아직도 “엄마 미워!”하는 어린아이 수준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시련을 통해서라도 예수님 닮은 성숙한 신앙인이 되게 하시려고 이렇게 시련을 주시는 것이겠지요?” 이것은 철이 든 것이다. 그런데 더 성숙하면, “하나님께서 이런 나 때문에 얼마나 근심하시고 마음 아프실까?”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성숙한 성도되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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