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렘33:14-26
제목:성도에게 요구되는 믿음
▶첫째, 현실의 어려움보다 말씀의 성취를 바라보는 믿음이 필요하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14절) “선한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시겠다는 예언의 말씀>을 의미한다. 비록 하나님께 범죄하였을지라도 하나님께 속한 언약백성이기에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회복시키겠다는 말씀으로서, 선한 말을 다른 말로 하면 “복된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반드시 약속을 성취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14절) “그날 그 때에”(15절) “그 날에”(16절) 이것은 약속의 성취를 강조하는 말씀이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없는 것이다. 왜 믿음으로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지 못하는 것인가?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현실과 동떨어진 말씀을 하고 있었다. 지금 남유다의 상황은 비참한 상황이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흑시대였다. 이런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비록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고난이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하게 하실 것이라고 선포한다. 그것이 유다백성의 귀에 들어왔을까? 아마 유다백성은 약속의 성취보다는, 빨리 이 고난을 거두어가시고 바벨론을 물리쳐 달라고만 했을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내가 지금 행복한가 아니면 불행한가?” 이런 시각에서만 바라본다는 점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를 불행이 아닌 행복한 삶을 살도록 도우시는 분”으로만 바라본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늘 현재에만 몰두한다. 그러나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있다.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사는 성도의 삶은 행복과 불행으로 구분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조차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붙잡지 말고, 말씀을 붙잡는 성도가 되라.
▶둘째, 영원히 깨지지 않을 하나님의 언약을 붙드는 믿음이 필요하다.
성도는 하나님의 언약을 신앙의 토대로 삼아야 한다. 20절을 보시면, “낮에 대한 나의 언약,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에 의해 해와 달이 움직이고, 그로 인해서 낮과 밤이 오는 것”을 말씀한다. 오늘날 세상은 이것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며 “자연법칙”이라고 하지만, 성경은 “낮과 밤의 움직임이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맺은 언약은 취소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연세계에 새겨두신 낮의 언약과 밤의 언약은 결코 깨뜨리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고, 오후가 지나면 밤이 되는 것 등등 모든 것은 세상이 창조된 후부터 주님 다시 오시는 종말의 때까지 변치 않고 계속되는 자연의 질서이다. 이스라엘백성은 언제나 하나님을 반역하며, 말씀듣기를 거절하고 순종하기를 거역하며,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사랑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구원이 아니라, 멸망이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과 언약을 세우시고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백성으로 고쳐 가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열심이고 신실함이며, 은혜이다. 이스라엘은 비록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하는 길로 가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기 때문이 아니라, 고치시기 위함이었다. 언약이 아니었다면 이스라엘은 일치감치 하나님께 버림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셨기 때문에 불쌍히 여기고 돌아오게 하시는 것이다.(25-26절) 그러므로 성도는 해와 달이 창조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아래 변함없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 또한 깨뜨려지지 않고 우리를 붙들어 천국까지 이끌어 가실 것임을 믿어야 한다. 어떤 형편에서라도 하나님의 언약, 영원히 깨지지 않을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라. 내가 잘났든 못났든, 나의 상태와 현실에 상관없이 언약에 의해 인도받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란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