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세살 버릇 여든 간다
본문:렘22:10-30
오늘 본문은 유다 마지막 세 명의 왕들에 대한 예언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은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너희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 그를 위하여 애통하지 말고 잡혀 간 자를 위하여 슬피 울라 그는 다시 돌아와 그 고국을 보지 못할 것임이라” 여기서 먼저 두 명의 왕을 소개하는 데요. 죽은자는 요시야 왕이고 잡혀 간 자는 그의 아들 살룸왕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비교적 유다를 잘 다르렸던 요시야 왕이 전쟁에서 갑작스럽게 맞은 죽음을 애통해하기보다는 그의 아들 살룸이라고 하는 여호아하스를 위해 울라는 하나님의 뼈 있는 말씀이십니다. 그래도 요시야는 장례라도 치렀지만 살룸은 애굽으로 잡혀가서 다시 고국을 보지 못하고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시야의 넷째 아들 살룸은 백성들의 지지로 왕위에 올랐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악한 왕이었습니다. 애굽을 떠나게 하신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았기에 그는 약속의 땅에서 나가 반대로 애굽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성경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초지일관 가르칩니다. 종살이하다 빠져 나왔으면 그 땅을 청산하고 새 땅의 백성으로 살아야 영원한 땅에 들어갈 수 있음을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가는 방법임을 오늘 본문은 보여줍니다.
성도님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은 지금 어떻게? 이게 아닙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서 그 죽음을 어떻게 평가하실지가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 이걸 기억하시는 우리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20절에서 북쪽으로는 레바논 동쪽으로는 바산과 남쪽으로는 아바림, 그리고 가나안 주변의 높은 곳에 올라가서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예루살렘이 멸망했다고 소리를 높여 탄식하라 하십니다.
성도님들 예루살렘이 멸망한 책임과 원인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하나님의 인내가 부족한 것입니까? 아이고 오래 참으시지 그걸 못 참고 기다리신 것입니까? 성도님들 예루살렘에 임한 위기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닥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평안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를 보내어 말씀하셨지만, 예루살렘은 “나는 듣지 않겠다”하고 거절하였습니다.
21절입니다.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눈에 보이고 가까운 이웃나라와의 정치적 군사적 동맹을 더 신뢰하고 그들을 부러워 한 나머지 그들이 섬기는 신들까지 수입을 해다 열심히 섬겼습니다.
이런 예루살렘의 불순종은 비단 예레미야 때의 일시적인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일찍이 그랬습니다.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관되게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닫았습니다. 그것이 예루살렘이 걸어온 길이었습니다. 그걸 하나님께서는 불순종이 습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청종하지 아니함이 너희의 습관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이십니까? 그런데 때가 됐습니다. 22절 말씀입니다. “네 목자들은 다 바람에 삼켜질 것이요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리니 그 때에 네가 반드시 네 모든 악 때문에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 때가 차매 하나님이 아들을 이 땅에 보내사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처럼 이제는 하나님의 진노의 멸망이 임할 때가 되었습니다. 12월이 지나면 1월이 오는 것처럼 이제는 예루살렘 자신이 걸어온 길에 책임을 져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심판의 바람이 예루살렘의 목자, 권력자를 가리지 않고 그들을 심판하게 될 것입니다. 포로로 끌려가 온갖 수치와 멸시를 당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고난의 아픔을 경고하십니다. 23절입니다 “레바논에 살면서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여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 같은 고통이 네게 임할 때에 너의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랴
그들에게 해산하는 여인의 진통 같은 끔찍한 비명과 아픔이 갑작스럽게 찾아올 것입니다. 그 고난 앞에서 그들의 신음이 땅에 가득 울릴 그 날이 언젠가 조만간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왕인 야호야긴의 왕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비록 주께서 고니야라고도 불리는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을 아무리 귀히 여기고 사랑한다고 하시더라도 그도 심판 하시기로 하셨습니다. 고니야가 오른손에 낀 옥새 가락 반지처럼 소중하다 하더라도 그를 손가락에서 빼내어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실 것입니다.유다 사람들이 이방 사람들의 땅에서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나안 땅이 아닌 이방 땅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그 뿌리로부터 완전히 잘리는 저주받은 죽음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 들려옵니다. 여호야김은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 아애 이방 땅에 내버려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백성들도 아호야김에게 소망을 두고 다시 한번 시작하자고 그래도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인데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 믿고 있는 자들에게 예레미야는 경고합니다.
고니야는 자녀도 없고, 한 평생 낙을 누리지도 못할 사람‘이라 불립니다. 여호야김이 실제로 자식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의 왕권을 물려줄 만한 아들이 없었던 것입니다.
30절입니다. ”그의 자손 중에서 형통하여 다윗의 왕가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이니라 하시니라“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성도님들 오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내린 심판은 하루 아침에 내리신 뜬금없는 재앙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이 평안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경고하시고 회개하면 살수 있다는 생명의 길을 말씀하셨지만,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기에 익숙했습니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어려서부터 반복적으로 외면했던 몸에 밴 버릇이 있었음을 경고하는 부분입니다. 세상에 그 좋고 많은 습관중에 그들이 몸에 밴 습관은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저지르고 하나님은 이웃나라들을 통해 징계하시고 압제당한 이스라엘이 회개하면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오래된 이스라엘에 벤 그들의 습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예언자를 보내어서 하시는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보내는 것이 그들의 습관이었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습관이 빚어낸 결과는 그들의 멸망이었습니다.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매우 고치기 힘들고, 그것은 점차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 영향은 결국 인생을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믿음의 습관은 어떠한가요? 우리는 오늘 이스라엘의 잘못된 습관을 거울로 삼아, 바른 하나님의 뜻을 외면치 않고 귀 기울이는 믿음의 습관을 몸에 익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습관 말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힘써 주님을 찾으며, 그 거룩한 믿음의 습관이 몸에 배길 원합니다. 이 하나님을 찾는 습관이 우리를 하나님과 함께 하는 거룩한 길로 우리를 이끌어 가줄로 믿습니다. 모든 성도님들에게 이 은혜가 함께 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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