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왕상17장 1-4절
제목: 그릿 시냇가의 은혜
말씀: 장평선생님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아합왕과 엘리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합왕은 세계 역사에 기록된 실존 인물입니다(이스라엘 7대왕)
대영박물관에 보관 중인 석비에 앗시리아와의 전투 상황에 대해 적혀있는데, 이 곳에 이스라엘 아합왕의 이름과 군대의 규모가 상세히 기록되있습니다. 아합왕은 재능있고, 유능한 왕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치력도 있고, 군대 규모도 상당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생활에 중대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이 번영을 누리고 있다 할지라도, 시돈왕 아스다롯의 제사장 딸이며 열렬한 바알 숭배자인 이세벨과 결혼하면서,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숭배했고, 여호와 신앙에대해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뿐만아니라, 갈멜산에서 하나님을 시험했고,나봇의 포도원마저 빼앗아갔습니다. 타락한 왕이 된 것이죠. 가장 슬픈 것이 있다면,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것이 타락했을 때 일것입니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타락할 때 가장 슬프다는 것이죠. 교회의 존재 이유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라는 것이고, 목숨으로, 생명으로 다른 사람을 풍요롭게 하는 것인데..., 내가 죽기보다 남을 죽이려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나누지않고, 움켜지고, 더 가지려 하기 때문에 슬퍼지는 것입니다. 희미한 크리스찬의 빛, 맛을 잃은 소금같은 크리스찬이라는 얘기가 들려올 때 슬퍼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고통이 많아서 슬픈 것이 아니라, 고통을 함께 해주는 사람이 적어서 슬픔이 큰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크리스찬이 고통받는 자의 곁을 지켜줘야할 때 입니다.
둥근 삼각형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이런 표현을 형용 모순이라고 합니다. 삼각형은 둥글 수 없기에 성립이 안되는 표현이죠, 마찬가지로 교만한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 우상숭배하는 하나님의 백성도 성립이 안되는 표현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죠, 멸시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죠, 다른 것을 숭배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이런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지금 아합왕이 살던 시대, 엘리야가 살던 시대에도 이러한 형용모순의 신앙인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엘리야는 이러한 벼랑 끝에 놓여있는 절박한 시대를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악한 왕의 권력과 유일신 신앙에 침투한 바알의 혼합주의 문화를 끊기위해, 군대나 단체를 일으키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한 사람을 사용하신 것이죠. ■성경은 엘리야를 소개하면서 그의 배경에 대해서 침묵합니다.
대신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찾는 사람은 배경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첫 번째로, 엘리야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이 그를 찾았고, 이스라엘의 희망이 되었을까요?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1절 말씀 중에,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아합에게 가뭄에 대한 예언을 합니다. 이 가뭄 예언에는 단순히 우로가 내리지않는다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아합왕과 그의 추종세력들이 믿고 있는 삶의 방식이 확실히 틀렸다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들은 땅의 소산을 풍성하게 하는 신이 바알(Baal)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바알이 비를 내리게 하고 땅의 생산을 주관하는 신이라고 여긴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가뭄의 선포는 그들에게 크나 큰 도전이 되지않을 수 없었습니다. 만일 비가 진짜 오지않는다면 바알의 정체가 들통날 것은 뻔한 사실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풍성한 삶에 대한 방식이 바알의 방식이냐, 하나님의 방식이냐 하는 중대한 문제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비와 이슬이 내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로 무엇이 증명되었나요? 참 신과 거짓 신이 누구인지 증명된 것입니다. 그동안 아합과 이세벨과 우상숭배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속인 것이 들통날 것은 뻔한 사실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풍성한 삶에 대한 방식이 바알의 방식이냐, 하나님의 방식이냐 하는 중대한 문제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비와 이슬이 내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로 무엇이 증명되었나요? 참 신과 거짓 신이 누구인지 증명된 것입니다. 그동안 아합과 이세벨과 우상숭배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속인 것이 들통난 것이죠.
바알의 방식대로 살면 비도 내리고, 이슬도 내리고/ 풍요로운 삶이 보장된 행복이 있을 것이라는 이 모든 것들이 거짓이었음이 밝혀진 것입니다.
●깨닫는 것이 은혜라고 말합니다.
비록 인생의 가뭄을 만났지만, 이를통해 그동안 살아왔던 방식이 잘못된 것이라고 깨달으면 은혜입니다. 곧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니까요. 그래서 회개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무덤에는 회개가 없습니다. There is no repentance in the grave.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를 보며 가장 안타까운 것은 그에게도 회개할 기회가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자신을 배신할 사람에 대해 언급하셨지만 유다는 끝내 외면하였습니다. 그 후 십자가 사건을 보며 고뇌하였고 스스로 목을 매었지만 끝내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버리지 않으시지만, 죄인은 회개하지 않는 고집에 의해 스스로 멸망됩니다. 가룟 유다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회개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는 회개하고 기회를 붙들었습니다. 여기에 차이점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회개가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실 때, 그것을 지금 바로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 각 자의 삶 가운데, 인생의 가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힘들고 바짝마른 고통의 가뭄을 겪는 동안,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엘리야도 실제로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는 것을 목도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3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 임하여, 지정된 땅인 그릿 시냇가로 가라고 했을 때 더욱 굳건하고 확실한 믿음으로 순종해서 움직였던 것입니다. 엘리야의 이 믿음은 이후에도 흔들림없이 9절에서 시돈에 속한 사르밧, 곧 이세벨의 고향이고, 바알 숭배의 중심지로 가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순종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5절 말씀도 참 중요한대요. 왜냐하면 엘리야의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 여기에서 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5절 말씀에,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엘리야의 삶의 방식이 되는 근거가,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죠. (중국어로 말하면 엘리야가 于是以利亚照着耶和华的话.)
엘리야는 확실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오늘의 본문 말씀은... 가뭄 중에 하나님이 어떻게 엘리야를 보살피시고, 어떤 통로로 엘리야에게 공급하시는지 보여줍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보내신 그 곳 그릿시냇가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통로를 통해 필요한 공급을 제공받습니다. 왜냐하면, 4절의 말씀 그대로, 6절에서 까마귀들이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이 곳에는 “마실 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뭄 때문에 다른 곳에는 물이 없었지만, 그릿 시냇가에는 마실 물이 있었습니다. 그릿 시냇가에 마실 물과 떡과 고기가 있다라는 것은 엘리야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복이 되는 말씀입니다. 가뭄 사건 이후에, 남들은 못 먹는데 엘리야만 먹고 마실 수 있어서 복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비록 황망하고 외로운 그릿 시냇가이지만, 사람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물어도 바다는 결코 마르는 법이 없듯이, 하나님은 마르지않는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엘리야는 까마귀마저 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면서, 오직 구원은 하나님에게 속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겠죠? 이 아침에 기도하실 때, 내게도 하나님이 예비하신 땅 그릿 시냇가의 삶이 있다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릿 시냇가로 인도함을 받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눈 앞의 상황에 절망하지 않고, 작은 사건 하나하나에 연연하거나 낙심하기 않도록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이 말씀은 제게도 큰 은혜와 도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선교지에서 그릿시냇가를 경험하며 사역하리라 믿으며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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