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잠10:18-32
제목: 의인의 입과 악인의 입
잠언에서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주제가 아마 ‘말’일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 아시는 것처럼 바른 지혜는 바른 행동으로 표현되는데요 행동은 그 중에서도 말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다라고 야고보서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어제 본문인 잠언 10장부터 특히 ‘말’에 대한 지혜를 많이 다루고 있는 잠언의 두 번째 챕터가 시작이 됐는데요. 오늘 본문에서도 의인과 악인, 그리고 지혜자와 어리석은 자의 말을 대조적으로 설명하면서 의인 즉, 지혜로운 자는 지혜로운 말을 악인 즉, 어리석은 자는 우매한 어리석은 말을 하는 것으로 의인과 악인을 판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의인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지혜로운 자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경외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성도로써 바른 말을 하는 우리들 되길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악인의 말의 특징을 설명합니다. 18절이 말의 내용을 19절이 말의 양을 설명하는데요 먼저 18절을 보실까요? “미움을 감추는 자는 거짓된 입술을 가진 자요 중상하는 자는 미련한 자이니라” 악인의 말은 분별력과 진실함이 없는 ‘거짓말과 남을 중상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19절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게다가 미련하고 악한 사람들의 말은 양으로도 많다는 겁니다. 저도 많이 찔리는 본문인데요. 여기서 말이 많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많이 한다는 것 보다는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악인이 특징이 말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자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게 되는데 게다가 그 말이 진실되지 못한 말이고 자기를 돋보이게 하고자 남을 깍아내리면 면서 자기를 높이는 사람의 말이기에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실수와 허물이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공감이 되는 말입니다. 그래서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으니 잠언의 기자는 말을 조심하는 사람을 지혜롭다고 말합니다.
그 다음 21절에 내용은 말이 가지는 영향력에 관한 내용입니다. 잠언의 기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21절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어 죽느니라” 의인의 말과 미련한 사람의 말은 그 말의 영향력에서도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의인의 말은 정직하고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의인의 마음에는 분별력이 있고, 그 분별력에서 나오는 말이기 때문에 그 말에는 선한 영향력이 있습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의 마음 악인의 말에는 가치가 없습니다. 무익합니다. 오히려 그 말에 속아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말이라고 했습니다. 한 치 30센티도 안되는 혀를 가지고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22절에서 30절의 내용에도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의인과 악인의 대조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그 중심적인 흐름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이 누리는 복이 있습니다. 먼저, 의인에게는 주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선언합니다. 2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어제 담임목사님이 설명해 주신 것처럼 이 본문은 조심스럽게 해석해야 되는 말씀입니다. 선한 의인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은 재물과 복입니다. 어제 본문 15절과 16절에서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멸망이니라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르느니라 이 말은 의인은 부자가 되고 악인은 가난한 사람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악인은 재물을 의지하고 의인은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악인은 돈을 사랑하기에 재물 때문에 근심하지만, 의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기에 재물로 인해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2절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이 말은 모든 부의 권세가 하나님께 있다는 뜻이지 그래서 의인들은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하나님의 경외하기에 재물이 상관이 없이 오직 하나님의 바라보고 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 세상과 사회 현실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십니다. 의인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시고, 악인에게는 벌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지금 보기에는 악인이 부요해 보이고 번성해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악을 향하는 자는 곧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자는 내 눈에 보이는 상황이 형통치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손을 부지런히 하고 정직한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을 성경에서는 부유한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27절과 28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수명은 짧아지느니라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 장수는 하나님께서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복입니다. 동일한 내용이 잠언에서는 여러번 반복되어 있는데요. 이 말은 그렇다면 오래살면 장수하면 의인이요 단명하면 악인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을 이렇게 오해하면 커다란 실수를 범하게 되는데요? 그럼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전한다는 이유로 순교를 당하고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은 복 있는 사람들이 아닌건가요? 사고로 질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우리 가족들은 지혜있는 자 의로운 사람들이 아닌가요? 오히려 생명을 위하여 하나님을 팔아 배교하고 세상에 순응하며 숨어 지내는 자들이 훨씬 지혜롭다는 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편에서의 관심은 오직 의인에게만 향해 있습니다.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 아니시고 지나치게 편애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악인들의 삶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이 오래 살든 부자가 되든 그들은 결국 멸망의 길을 가는 이미 죽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의인에게만 있습니다. 따라서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 의인의 희망은 그것이 삶에 어떻게 나타나든지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기쁨으로 성취되어진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의인에게는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주님의 도’가 정직한 삶에게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29절 “여호와의 도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니라” 하나님의 도가 누구나에게 부와 장수와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로 인해 힘을 얻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부와 장수와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은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여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는 사람입니다. 악인은 도리어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 악인은 요동하는 세상에서 배겨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힘이 되어주시지 않는 것, 그 자체가 심판이고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침은 힘이 되어주고, 그것이 그들에게 복이 됩니다.
잠언의 기자는 10장의 마지막에서 ‘말’에 대한 주제의 결론을 맺습니다. 31에서 32절입니다. “의인의 입은 지혜를 내어도 패역한 혀는 베임을 당할 것이니라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하느니라” 의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특징은 지혜와 남을 기쁘게 하는 말입니다. 결국 의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남을 살리는 말입니다. 지혜가 있어야 해야 할 말과 하지 않아야 할 말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남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님들 오해하시면 안되는 것이 하나 있는데요 잠언 기자는 ‘언어생활의 기술’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잠언 기자는 말 잘하는 법. 바른 말을 하는 노하우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더 좋은 강연들과 더 좋은 기술을 설명하는 지혜자들의 이야기가 실렸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보다 잠언은 말하는 사람의 존재의 변화, 마음의 변화를 가르칩니다. 의인이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여 지혜를 얻고, 하나님의 도를 지키는 사람들이 될 때, 그에게서 나오는 말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말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선한 영향력, 살리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아 내가 조심해야 겠구나 이제는 바른 말을 하며 살아야겠구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변하고 마음이 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의인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변화된 그들을 통해 사람을 살리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인은 지혜있는 자는 이 세상의 물질에 마음을 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형편과 사정에 마음을 뺏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하고 신뢰함으로 겸손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길 지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지혜자요 의인이요 구원받은 사람이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자기고 바른 말 옳은 말 사람을 살리는 말 하나님의 영화롭게 하는 말과 삶을 살아내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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