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히브리서 3:7-19
제목: 오늘 잡으라
히브리서를 쓴 그 누군가는 시험과 박해 중에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그중에서도 여전히 율법과 할례와 같은 여전히 구약에 머무르고 있는 히브리파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예수님의 그 복음, 그 진리를 끝까지 믿고 지키지 못하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엄중한 경고를 전하기 위해 히브리서를 썼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대상인 히브리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율법의 제사 제도. 대제사장의 지위를 예를 들어가면서 우리가 확실히 믿고 순종해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보다 크시고 천사들보다 크시고 선지자들 보다 모세 보다 존귀한 자라고 설명했던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참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는데요. 집마다 지은이가 있듯이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그래서 그 만물의 주인이신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단단히 붙잡고 그래서 닻을 단단히 붙들어 매는 것처럼 또 3장 1절의 말씀을 인용하자면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영어 성경으로 직역하면 예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또 다시 자꾸만 뒤돌아보는 히브리파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출애굽의 세대 선조들의 실패를 교훈 삼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를 위해 시편 95편을 인용하는데요. 출애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했던 실패를 다루고 있는 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를 살아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를 반역하거나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명하셨는데, 그들은 마음이 완고하여 불신앙에 빠졌고, 그래서 주님께서 진노하여 맹세하신 대로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신 그 역사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출애굽 시대 이스라엘의 완고함과 불순종 곧 불신앙으로 인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사건을 기억하자고 말하면서,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오늘 TODAY라는 날짜상의 의미보다는 지금. 이라는 말로 쓰인 오늘입니다. 과거 유대인들의 선조들이 했던 출애굽의 경험을 지적하면서,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권면합니다. 12절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지금도 출애굽 세대처럼 악한 마음을 품고서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스스로 조심할 뿐 아니라 서로 권면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완고하게 되거나 하나님을 떠나는 죄에 빠지지 않으려면 ‘오늘’ 혹은 ‘지금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중심내용입니다. 14절입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아멘 그리고 오늘, 지금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자세는 언제까지요? 끝까지 개인적으로 종말을 맞이하거나 주님 다시 오실때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출애굽 구원의 사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구원의 시작보다 끝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출애굽 구원의 하나님을 경험하고 기쁨으로 광야로 나왔지만, 그들은 홍해 앞에 물과 먹을 것이 없음을 보고 두려워하여 불평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무려 40년간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지금으로 치면 매일 아침부페와 에어컨과 난방시설로 이스라엘을 지켜주셨는데 그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끝까지 그 마음을 지켜서 가나안 안식에 들어간 사람들이 극소수였습니다. 그처럼 구원은 끝까지 확신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끝까지 확신을 지킨 사람들이 결국 안식에 들어가고, 그런 사람들이 주님이 주시는 구원, 영원한 안식을 주님과 함께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고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며 성찰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집니다. 18절과 19절입니다.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우리 정서상은 맞지 않지만 히브리식 교육의 우수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성질이 급해서 답 말해주고 얼릉 외우라고 하지만. 유대인들은 끝까지 질문을 통해서 자기의 부족함을 깨닫게 하는 방법을 지금까지도 사용합니다. 유대식 그 질문을 통해 이스라엘이 끝까지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의 불순종과 불신앙이라고 지적합니다. 출애굽이 구원의 시작이라면, 그 구원의 완성은 가나안 땅에서의 안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믿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의 마음은 굳어 완고하게 되었고, 완고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조차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끝까지 구원의 길을 가지 못하고 중간에 멸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광야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를 통해 지금 박해와 유혹 중에 신앙에서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을 권면합니다. 구원의 여정에서 끝까지 확신을 가지고 걸어가는 사람들만이 궁극적인 안식과 구원에 이를 것이고, 그들이 구원을 주님과 함께 누리게 될 것이라구요. 그러므로 끝까지 믿음 안에서 견고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출애굽 구원의 사건의 완성은 가나안의 안식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구원도 주님과 함께 구원을 누리는 일이 구원의 완성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을 누리기 위해서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지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오늘이라는 시간이 이어져서 생의 끝에 다다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영원한 안식과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일은 오늘 지금 당장 ‘오늘 주님의 말씀을 듣고 오늘 믿음으로 오늘 순종하는 일’입니다. 다음은 없습니다. 코로나 시대 지금 우리가 그걸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기경하여 날마다 땅을 뒤집어 엎는 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이 굳어지지 않게 하고, 그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오늘’ 지금을 말씀으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 아래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결국도 이와 같게 되길 소망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믿음, 오늘 지금 당장 단단히 붙잡고 오늘 지금 순종함으로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 인정하시는 믿음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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