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눅1:39-56
제목: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
본문은 엘리사벳과 마리아가 만나서 주님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가?
첫째,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형편과 처지가 아닌, 주님만 바라보고 기뻐하게 된다.
본문에서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을 살펴보면 몇 가지 재미있는 비교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엘리사벳은 제사장 사가랴의 아내이며, 이들 부부는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함으로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칭함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반면에 마리아는 초라한 나사렛마을에 거하던 이름없는 처녀였을 뿐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출신 조건>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다. 그리고 두 여인이 다 아이를 잉태했지만, 엘리사벳은 아이를 가진 것이 말 그대로 복이 되는 일이었고, 마리아는 아이를 가진 것이 오히려 그를 곤란하게 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우리 상식대로 하자면 예수님은 마리아가 아니라 엘리사벳에게 잉태되어 오시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왜요?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칭함 받은 제사장 가문으로 오시면, 예수님의 출신성분과 정통성이 인정되면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증거가 유대인들에게 더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님을 제사장 가문이 아니라 나사렛의 초라한 목수 집안에서 태어나게 하셨다. 왜인가? <하나님의 일은 인간적 조건과는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임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또한 엘리사벳은 아이가 없던 상태에서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 인사를 받아야 할 복된 일이었지만, 마리아는 처녀가 임신을 한 것이기 때문에 축하인사는커녕 비방과 책망을 들어야 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처럼 두 여인이 처한 상황과 위치를 생각해 본다면 누가 뭐라 해도 엘리사벳이 마리아보다 월등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마리아를 만난 엘리사벳은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반응을 보여준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자, 엘리사벳이 성령충만을 받아 42-45절에 나오는 노래를 부른다. 엘리사벳은 자신이 아이를 임신한 것에 대한 기쁨보다는, 마리아의 잉태를 기뻐하며, 마리아가 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마리아를 향해 “내 주의 어머니”라고 표현하고 있다. 41절에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고 말씀한다. 마치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처럼, 엘리사벳의 고백은 인간적 생각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을 받아 고백한 내용이다. 마리아가 잉태한 아이가 주님이신 것을 알게 된 것은 성령의 충만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러분, 엘리사벳은 지금 세상에서의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형편과 조건을 전혀 보지 않고, 오직 마리아에게 잉태된 아이만 바라보고 있다. 이것이 성령충만이다. <성령충만은 세상에서의 자신의 위치나 조건을 보지 않고, 주만 바라보게 한다.> 성령충만의 상태는 내가 아닌, 주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주님이 관심의 대상이고, 주님으로 인해서 기뻐하는 것이 성령충만의 상태이다. 여러분 모두 성령충만 받으시기를 축복한다.
둘째, 하나님만이 참된 복이라고 믿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바르게 찬양한다.
45절에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왜 복이 있다고 하는가?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누가 복이 있는 사람이라구요?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다. 마리아는 무엇을 복이라고 고백하는가? 46-48절을 보시면,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자기를 복이 있다고 말할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비천함을 돌보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비천한 여자임을 솔직하고 겸손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뭔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만한 특별한 자격이나 조건이 없음에도,“주의 어머니”라는 너무나 놀라운 칭호로 불려지게 된 것에 대해서 감격과 기쁨을 표현하는 것이다. 마리아는 왜 자기가 복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자신이 자격이 없는데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누가 복이 있다구요?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이다. 두 여인 모두 세상적인 복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을 복과 연결시키고 있다. 여러분, <참된 신앙은 하나님이 복이라고 믿는 것>이다. 시16:2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 진짜 신앙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모일 때 드러나야 할 모습이 무엇인가? 인간적 조건과 세상에서의 위치는 모두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을 복이라고 고백하고, 하나님이 복주시는 분임을 고백해야 한다. 그런데 교회안에서 자기의 사회적 지위, 세상에서 잘나가는 모습을 앞세워서 자신을 남보다 높게 여기고, “내가 너보다 괜찮은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할 교만이다. 교회에서는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대기업 회장도, 의사도, 판사도, 누구라도 겸손히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만 높여야 한다. 왜요? 하나님은 인간적 조건을 보시지 않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참된 신앙은 인간적인 조건과 실력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과 오직 하나님을 복이라고 믿는 것임을 잊지 말고, 늘 은혜 입은 자로서, 하나님만을 나의 복이라고 찬양하는 성도 되시길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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