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눅 18:31-43
제목: 성도에게 필요한 은혜
<은혜>란 헬라어로“카리스”라고 하는데, 뜻은 “자격없는 자에게 보상을 바라지 않고 주는 선물”이다. 성도는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다. 매일 매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필요하다. 그런데 일반적 은혜 외에, 남들이 알지 못하는 남다른 은혜도 있다. 성도가 신앙생활하면서 필요한 남다른 은혜가 무엇인가?
첫째, 감추어진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은혜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자신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이유는 그 말씀이 감취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의 수난 예고는 오늘 본문까지 포함하면 여섯 번째의 수난예고의 말씀이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매번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를 못한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이 지금은 들어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지만, 나중에 성령을 받은 후에는 예수님이 왜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셔야만 했는지, 십자가가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였음을 깨닫게 되고, 결국 자기들도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된다.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남다른 은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령이 성도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은혜>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말씀이 깨달아지는 은혜>이다. 말씀을 들을 때에 남들은 안 믿어지는데, 나는 믿어지는 것이다. 믿음이 아무나의 것이 아닌 것처럼, 깨닫는 것도 아무나의 것이 아니다. 말씀을 읽고 들을 때에 깨달아진다면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보다 더 확실한 <하나님 자녀됨의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말씀을 대할 때마다 항상 잊지말고 기도해야 할 것은 <말씀이 내게 감추어지지 않기를, 말씀을 읽고 들을 때에 깨달아지는 남다른 은혜>가 있기를 구해야 한다.
둘째,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시는 은혜.
예수께서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 길가에 앉아 구걸하던 한 맹인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친다. 아시다시피 주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그의 눈을 열어 보게 하신다. 사실 이 사건은 겉으로만 보면 맹인의 눈을 뜨게 한 기적 중의 하나로만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본문의 사건은 바로 앞 부분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과 연결되어 있는 말씀이다. 제자들은 눈을 뜨고 있으나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맹인은 눈을 감고 있으나,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알았지만, 맹인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예수, 즉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본 것이다. 맹인은 눈을 감은 자였으나, 실상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수 있는 자였다. 주님은 이것을 가리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하신 것이다. 부자청년은 어려서부터 계명을 다 지켰다고 자신있게 말했고,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부족을 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본 것은 <자기들의 행함>이었다. 그러나 <자기의 행함을 근거로 자신이 믿음의 길을 바르게 가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은 실상은 보지 못하는 맹인과 같은 것이다. <자신의 불쌍함을 볼 수 없는 것>이 맹인상태이다. 그런데 맹인의 믿음이 무엇인가? <보지 못하는 자기 처지를 불쌍하게 여긴 것>이다. 맹인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 주목하고, <자신의 보지 못하는 현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은혜를 구한다. 그게 믿음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은혜, 모든 것을 바르게 볼수 있도록 눈을 열어주시는 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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