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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16-3-23 새벽설교 - 무죄와 유죄(눅23:1-12)

최민환2016.03.30 14:18조회 수 145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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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와 유죄(눅23:1-12)

 

▶판사가 한 사건을 놓고 다투고 있는 두 명의 변호사를 불렀다. 판사가 말했다."고소인측 변호사는 내게 천만 원을 주었고, 피고소인측 변호사는 천오백만 원을 주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두 변호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판사가 피고소인측 변호사에게 봉투를 건내며 말했다. "여기 오백만 원을 돌려드립니다. 이제부터 저는 공정하게, 소신껏 재판을 진행할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이천만원이나 받아먹은 사람이 공정한 재판을 할수 있을까?

 

오늘 본문은 재판에 관한 것이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주님을 끌고 빌라도총독과 헤롯왕에게로 끌고가서 빌라도의 법정과 헤롯의 법정앞에 세웠다. 그런데 이 법정에는 3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고발자가 정당하지 않았다.

백성의 장로들은 예수님을 세가지 죄목으로 고발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1)백성을 미혹한 적이 없으며, 2)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하신 적이 없다. 이들이 지어낸 말이다. 십계명 중 제9계명은 거짓증거를 하지 말라는 것인데,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로서, 사람을 죽이기 위해 거짓말을 서슴치 않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의 세번째 고발내용이 문제이다. 3)예수께서“자칭 왕 그리스도”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자들이다. 그런데 그토록 기다리던 진정한 왕이신 그리스도를 알아볼 눈이 없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기다린다면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하는 중이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알아볼 눈도 없고, 오히려 자기들의 왕 그리스도를 죽이려하니, 이들이 실상을 깨닫고 나면 얼마나 자신들이 끔찍한 짓을 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 이 재판은 본래 고발내용이 ●무고(誣告-허위사실을 날조하여 고발함) 즉 잘못된 고발이기에 예수님은 무죄이다. 그리고 거짓 증거(허위사실)를 가지고 고발한 자는 무고죄를 진 것이다.

즉, 예수님은 무죄이고, 고발자들이 유죄가 되는 것이다.

 

■둘째, 재판장이 정당하지 않았다.

본문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데리고 간 법정은 빌라도의 법정과 헤롯의 법정이다. 즉 빌라도와 헤롯이 재판장으로 있는 곳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이들은 재판장이 될 자격이 없었다. 왜인가? 재판장은 몇가지 자격조건이 필요하다. 그 중 첫째가 재판장에게 불의가 있으면 안된다. 즉 쉽게 말하면, 죄인이 죄인을 재판할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빌라도는 똑똑한 사람이었으나, 재판장으로서는 세가지 약점이 있었다.

첫째는, 사람의 소리에 약했다.

자신이 재판장으로서 보기에 예수께 죄가 없으면 무죄를 선포하면 끝이다. 그런데 유대인 군중들의 소리에 자신의 뜻을 굽혀버린다. 마태복음이나 요한복음에 의하면, 군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지르자, 군중의 소리에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여 무죄를 유죄로 바꾼다. 즉 환경에 따라 판결을 바꾸는 사람은 재판장으로서 자격이 없고 그의 판결 역시 틀린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권력에 약했다.

요19:12에 유대인들이 로마황제의 충신이 아니라고, 자기를 왕이라고 하는 사람은 로마황제에게 반역하는 것이라고 협박하자, 자기 자리를 안전하게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무죄를 유죄로 바꾼다.

 

셋째는, 책임회피를 했다.

재판장은 자기가 내린 결정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그는 예수의 무죄를 알고도 책임전가를 시도했다. 7절에 헤롯왕에게 보내 책임전가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헤롯이 다시 돌려보내니까, 나중에는 마27:24에 보면, 물을 가져다가 자기 손을 씻으면서,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는 나는 무죄하다고 말한다. 재판장으로서는 자격미달인 것이다. 빌라도는 스스로 자신은 무죄라고 선언했으나, 하나님은 무려 2천년동안이나 빌라도가 유죄임을 사람들의 입을 통해 고백하게 만드셨다. 어떤 책임회피나 타협도 진실을 막을수가 없다. 예수는 유죄가 아니라, 무죄이셨다.

 

또한 헤롯은 재판장으로서 합당치 않은 불의한 사람이었다. 이 헤롯의 이름은 헤롯안티파스인데,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많았고, 경솔하기 짝이 없는 자였다. 자기 아내를 버리고, 자기 이복동생 필립안티파스의 아내 헤로디아를 강제로 빼앗아 결혼했다. 그뿐아니라, 자기생일잔치에서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어 사람들을 기쁘게 하자, 어떤 소원이든지 들어주겠다는 경솔한 말을 해서 결국 의로운 세례요한을 죽이게 된다. 그가 얼마나 경솔한 자였는지, 빌라도의 질문에는 한두번 대답하셨던 주님은 헤롯에게는 한마디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대화를 나눌 상대가 아님을 아셨기 때문이다. 헤롯은 재판장으로 섰지만,“예수에 관한 진실이 무엇이냐? 예수가 무죄이냐 유죄이냐?”에 관심이 없었다. 9절에 그가 여러 말로 물었다는 말은 예수가 유죄냐 무죄냐를 가리는 심문을 했다는 뜻이 아니라, 기적을 보고싶어서 했던 질문들이다. 법정에서는 재판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이야기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재판과 관계있는 이야기만 해야 한다. 그런데 헤롯은 재판장으로서 그 어떤 자격도 갖추지 못했다.

 

==> 빌라도와 헤롯은 재판장으로서 공의롭지 못하고 불의했기에 자격미달이며, 불의한 그들의 판결 역시 불의할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유죄가 아니라, 무죄이다.

 

■셋째, 재판장과 죄수의 위치가 뒤바뀌었다.

(빌라도의 법정과 헤롯의 법정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지금 겉으로 볼때는 빌라도와 헤롯이 재판장의 자리에 있고, 예수님은 죄인의 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빌라도와 헤롯앞에 서 있는 예수님이 누구신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성자 하나님이시다. 이게 무슨 뜻인가? 겉으로 볼때는, 빌라도와 헤롯이 예수님을 재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반대이다.

(딤후4:8) 실상은 참되고 의로우신 재판장되신 예수 그리스도앞에 두 죄인 빌라도와 헤롯이 재판을 받는 것이다. 어떤 재판이요? 하나님앞에서 어떤 반응, 어떤 해석,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의 재판이다.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따라 이들의 결말이 결정지어지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자신들의 인생을 재판하실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볼수 있는 눈도 없었고, 영성도 없었다. 만약 그들이 예수님이 진실로 누구신지, 오히려 자신들이 그분앞에 재판을 받고 있음을 알았다면, 그들의 판결은 달라졌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진리를 알지 못했고, 진리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무죄한 분을 유죄로 판결하였다. 결국 그들의 인생은 한 사람은 자살로, 다른 한사람은 뇌에 벌레가 생겨 비참하게 죽었다.

==> 본문에서 실제로 재판을 받았던 자는 예수님이 아니라, 오히려 빌라도와 헤롯이었던 것이다.

 

==> 그러므로 우리는 실로 두려워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 주님이 함께 하시면서 지켜보고 계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이 아무리 더럽고, 부패하고 불의하고 썩어있다 할지라도, 완전한 재판장되신 주님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고 계신다.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예수님의 모습을 따라야 한다.우리 주님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의한 재판장들앞에서 “입을 굳게 다물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무죄하신 분이 불의한 자들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매를 맞으시고, 정당하지 않은 재판을 받으셔야 했다. 그럼에도 주님은 입다물고 순종하셨다. 왜요? 모든 상황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허락하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에 주님은 주어진 모든 상황앞에 입다물고 순종하신 것이다.

 

==> 성도가 처한 환경이 아무리 불의하고, 정당하지 않은 상황이라도, 주님이 함께 계심을 믿고, 오직 믿음으로 그 상황앞에 순종해야 한다. 내 앞에 다가오는 모든 상황이 주님이 허락하신 상황임을 믿고 불평과 원망의 입을 다물고 순종하심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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